5년 전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설마’에 당했다. 5년 전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큰 배가 기울어 바다에 빠질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질지 예측한 이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장막을 걷어낼수록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결함, 방조, 묵인, 뒷돈, 유착, 욕심 등 온갖 비리와 불법이 빚어낸 비극적 인재(人災)였다. 미리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살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응’보다는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대비’하지 못해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대형참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씨랜드청소년수련원화재(1999), 대구지하철화재참사(2003),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2014), 세월호 참사(2014), 포항 지진(2017), 제천 스포츠센터화재(2017)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벅찬 대형참사가 발생한 이후에야 관련 법을 손질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그러는 동안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인재(人災)였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5주기다. 대한민국은 안전해졌을까?

◆ 人災의 집합체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선박 자체에 결함이 있었고, 출항 전 검사시스템은 구멍 투성이였다. 기업은 이윤만을 좇았고, 기관은 유착으로 뒤덮여 있었다. 매뉴얼은 있으나 마나였고, 안전교육은 없었다. 초동 안전조치가 미흡했으며, 전시행정을 앞세우다 인명피해를 늘렸다. 책임은 ‘핑퐁게임’을 거듭했다. ‘비리백화점’이 따로 없었다.

5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이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국어사전에서 안전은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거나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가 필수다. 안전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꼭 해야 할 것에 대한 강력한 규정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기준과 규제를 강화했다. 선령 기준과 선박검사 기준을 강화했고, 기업과 기관 사이의 유착을 잡기 위해 공직자 재취업 규제도 강화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만들었다. 안전 예산도 늘어났다. 매년 1조원가량 늘어나면서 올해 20조원을 넘어섰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사진=연합뉴스

◆ 강력한 규제 마련에도 끊이지 않는 대형 인재들

하지만 인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 한달 만인 2014년 5월 경기도 고양버스터미널 화재와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해 7월에는 광주 소방헬기가 추락했고, 10월에는 경기 성남 판교 환풍구 붕괴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해가 바뀌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2015년 1월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를 시작으로, 2월 인천 영종대교 106중 추돌, 3월 인천 강화 캠핑장 화재, 5월 메르스 감염 확산, 10월 서울 강남역 승강장 안전문 수리 직원 사망 등 대형 인재들이 반복됐다.

2016년에는 서울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 정비 직원 사망(5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연쇄 추돌(7월),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10월) 등이 있었고, 2017년에는 경기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2월), 서울 이대목동병원신생아 집단 사망(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12월)가 발생했다.

‘설마’에 쓰러져간 안타까운 생명들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현주소
여전히 만연한 ‘안전불감증’…끝없는 人災

지난해에는 1월 경남 밀양 세종요양병원 화재, 2월 경북 포항 지진, 3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추락, 7월 경기 동두천 4살 여야 통원차량서 사망 등의 인재가 있었다. 타워크레인 사고도 해마다 반복됐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고양종합버스터미널 화재 이후 공사장 안전 확보를 위해 임시소방시설 설치기준을 마련했고, 유·도선 사업자 등의 안전운항 의무를 개선했다.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이후에는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고, 환풍구 붕괴 사고와 관련해서는 미비한 현행법령에 대한 일부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안전점검 규정을 마련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후에는 건축물 외벽 마감재가 준불연성능을 확보하도록 화재 안전성능을 강화했고,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안개 상습 구간 254곳을 지정하고, 일부 도로에 가변식 속도제한을 도입하는 등의 대응에 나섰다. 강화 캠핑장 화재로 사망 5명, 부상 2명 등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에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야영장의 안전과 위생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개정안 시행에 들어갔다. 반복되는 승강장 사고에 대한 대응으로는 승강장 유지관리 업무가 외주에서 직영으로 바뀌었고, 승강장 안전문 고정문을 여닫을 수 있는 비상문으로 바꾸고, 센서 교체를 통해 탈출을 쉽게 했다.

◆ 재발 방지에 급급한 정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끝날 줄 모르는 이유는 ‘대비’가 아닌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에야 원인을 찾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먼저 나서서 위험요소를 찾고 개선해야 한다. 즉,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 개선이 우선인데, 정부의 시각이 발생한 사고의 재발방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대비’는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만, 사고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는 2018년 2월 발생한 신촌세브란스병원 화재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화재 사건은 신속한 ‘대응’과 철저한 ‘대비’로 참사를 막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병원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2018년 2월 3일 오전 7시56분께 본관 3층 건물 우측 5번 게이트 천장에서 발생해 약 2시간 만인 9시59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화재 발생 직후 신속히 신고를 했고 소방설비 작동과 환자 대피 등도 빠르게 이뤄졌다. 병원은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와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원내 방송을 통해 화재 발생과 진압 상황을 알렸다. 소방당국은 화재 진압뿐 아니라 연기 확산 여부를 살피면서 일부 입원 환자들을 대피하도록 도왔다. 거동 불편자들은 소방관 등이 업어서 피신시켰다.

이날 현장에 있었다는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SNS를 통해 “간호사, 병원 직원과 출동한 소방관의 안내로 21층 옥상에 질서 있게 피신했다가 1시간 10분만에 병실로 무사 귀환했다”며 “화재가 진압됐으나 연기를 빼내는 작업 중이니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등 소방관과 병원 의사, 간호사 직원들이 100% 완전하게 대처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같은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대비 덕분이었다.

화재 초기진화에는 스프링클러의 역할이 컸다. 화재 직후 화재경보시스템이 작동해 스프링클러에서 나온 물이 자동으로 화재 진화에 나섰다. 방화벽도 곧바로 작동하면서 불과 연기를 차단, 통로를 타고 연결되는 별관 어린이병원까지 화염과 연기가 넘어가지 않았다.

해마다 서울 서대문구청 지휘하에 진행해온 화재 대응 정기훈련도 큰 도움이 됐다. 화재 직후 신속한 신고와 간호사들의 환자 대피 유도는 화재관리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 일부 환자가 연기를 조금 흡입한 것을 제외하면 사상자는 ‘0명’이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 사진=연합뉴스

◆ 사상자 ‘0명’ vs ‘191명’ 차이점은?

불과 8일 전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완전히 달랐다. 두 병원 모두 화재 원인으로 전기 합선이 지목됐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먼저 밀양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단 1기도 없었다. 의무 설치 대상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방법은 1개층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이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했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의 바닥 면적은 8600㎥다. 반면 밀양 세종병원은 층별로 바닥면적이 213~355㎥였다.

방화벽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층에는 도면과 달리 방화벽이 없었고, 2층 이상으로는 방화벽과 비상발전기 모두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다수가 중환자·고령 환자이던 사망자들은 대부분 연기로 인한 질식으로 숨졌다.

사고 당일 근무 의료진은 12명에 불과했다. 당직 의사인 민모(59)씨는 환자들을 대피시키다 숨졌지만 사고에 대처하기에는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했다. 신고도 늦었다. 경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로 연기가 들어온 시각은 오전 7시25분이었지만 최초 신고 시각은 오전 7시32분으로 7분이나 지체됐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인한 사상자는 사망자 41명을 포함해 191명에 이른다.

현재 소방청은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을 입법 예고하고, 면적 600㎥ 이상에 30병상 이상 입원실을 갖춘 병원엔 ‘스프링클러’를, 600㎥미만 병원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에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했다. 이에 더해 기존 의료기관까지 3년 이내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정령이 조금만 더 빨리 마련됐다면 어땠을까. 밀양 세종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재에 대한 ‘대응’으로 개정령을 마련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로 미리 마련했어야 하는 것이다.

◆ 각종 악조건 속에서도 이틀만에 잡힌 불

우리나라의 사고에 대한 대응 수준은 5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알맞은 대응이 이뤄진다. 이번 강원도 산불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4일 발생한 고성속초산불은 2019년 이후 한해 평균 산불 피해 규모에 육박할 만한 피해를 입힌 대형산불이었지만 이틀만에 꺼졌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 덕분이었다. 전국 단위에서 소방인력이 투입됐고, 유관기관의 협조가 물 흐르듯 진행됐다. 소방청에 따르면 단일 화재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국 소방력이 동원됐다. 3251명의 소방인력과 872대에 이르는 소방차량이 현장을 달려갔다. 9996명의 일반 공무원과 1만3328명의 군병력, 4518명의 경찰과 3401명의 자원봉사 등 4만618명이라는 막대한 인원도 협력했다.

문 정부는 산불 진압이 완료된 5일을 기점으로 산불 대응 태세에서 복구와 수습을 위한 지원체제로 전환하고 범정부적인 민간 복구지원에 나섰다. 재난안전특별교부세 40억원과 재난구호사업비 2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응 빨라진 정부, 강원도 산불 피해 최소화
사고 발생 이후 대책 마련은 문제

작금의 정부 대응은 칭찬할만 하다. 1996년 4월 발생한 고성산불(4일 지속), 2000년 4월 동해안산불(8일 지속), 2005년 4월 양양산불(3일 지속), 2017년 5월 강릉산불(4일 지속) 등 역대 강원도 대형 산불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판단과 대응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안타까운 것은 ‘사전 차단’이다.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이번 강원 산불의 시작은 전신주 개폐기로 추정된다. 경찰이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전신주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분석을 의뢰하고 탐문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전신주 관리 소홀 등도 파악하고 있는 만큼 조사결과에 따라 한전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전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면 산불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만약 전력공급설비가 강원도 산불의 원인이 많이 되고 있다면 필요의 완급을 따져 다양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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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한,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안전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사고에 대한 대응은 빨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다.

‘대응’보다는 ‘대비’ …사각지대 미리 살펴야

물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게 소용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더 튼튼하고 견고하게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의 속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응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안전사각지대에 있는 각종 ‘외양간’들을 미리 살피는, 대비에 의한 ‘안전한 국가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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