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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게 이유다.

이에 따라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에 손질하게 됐다. 법 개정은 임신 후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269조는 ‘자기낙태죄’, 270조는 ‘동의낙태죄’로 불린다.

A씨는 ‘동의낙태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A씨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동의낙태죄 위헌여부 심사를 위해서는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심사가 전제돼야 한다며 두 조항 모두를 심판 대상으로 삼았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정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헌법재판관은 “낙태죄 규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그 제한의 정도가 낙태죄 규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다만 당초 예측대로 헌법불합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해야 하게 됐다.

헌법불합치는 헌재가 어떤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신청을 받으면 합헌과 위헌 결정 이외에 내리는 5가지 변형결정 중 하나다. 변형결정에는 헌법불합치와 한정합헌, 한정위헌, 일부위헌, 입법촉구 등이 있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의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가 낙태죄 조항 자체에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는 물론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12년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기소돼 처벌된 사람들의 재심 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단순 위헌 결정과 달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어 추가적인 논란이 이어질 여지도 있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낙태죄 처벌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태아는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는게 결정의 이유였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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