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을 가입해 일정기간 경과 후 유지하고 있는 계약의 비율을 ‘유지율’이라고 한다. 보험사들은 현재 대외적으로 13회차와 25회차 유지율을 공개하고 있다. 유지율은 보험회사의 진가(眞價, 진짜 실력)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기간이 길어질수록 낮은 수치를 보인다.

보험회사의 유지율은 보험협회 홈페이지의 공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18년 상반기 생보사 평균 유지율은 13회차 81.2%, 25회차 67.6%이고, 손보사는 82.9%, 69.0%다.

유지율은 보험사는 물론 소비자에게 매우 유익하고 중요한 지표다.

우선, 보험회사는 보험료의 지속 유입으로 유지율이 높아야 보험사업의 장기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고, 추가 계약을 통해 성장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수입보험료 단절로 유지율이 낮아지면 보유계약이 감소하고 사업비(신계약비 및 유지관리비) 확보에 실패해 보험사업의 장기 안정적 운영이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유지율은 상품판매에 못지않게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다음, 소비자들은 보험계약을 끝까지 유지해야 보장과 저축의 기능을 유지해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다. 만약 중도에 실효되거나 해지하면 보장과 저축 기능이 단절돼 보험금 수령이 불가하고 원금 손실 등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소비자들은 보험을 가입할 때 가입하려는 보험회사의 유지율과 해당 상품의 유지율을 미리 살펴야 한다. 동일 조건이라면 유지율이 높은 보험사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험사들이 해당 유지율을 소비자들에게 온전히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한동안 5년차 유지율(13회차, 25회차, 37회차, 61회차)까지 발표했는데, 그나마 현재는 13회차, 25회차 유지율만 공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37회차, 61회차를 알 수 없고 그 이상 장기유지율(7년, 10년, 20년, 30년 등)은 더더욱 깜깜이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3년 이후의 유지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지율을 사실대로 투명하게 공개하면 그들의 치부와 거짓말이 단박에 드러나 망신당하고 영업에 치명타 입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려를 구체적으로 보면 ① 보험사의 진짜 실력(체력)이 탄로 나서 당초 보험사들이 제시했던 장밋빛 청사진이 허구로 판명돼 가입자들의 실망과 반발이 우려되고 ② 소비자들이 유지율을 사실대로 알게 되면 보험의 실효성이 없거나 적다고 판단해서 보험 가입을 기피하므로 영업에 타격이 크고 ③ 경쟁사에게 자사의 영업비밀이 모두 드러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보험사들이 장기 유지율을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으므로 소비자들은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밖에 없다. 보험사들의 주력상품인 종신보험은 가입 후 10년이 지나면 36.1%만 유지되고 63.9%는 유지되지 않는다.(금감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에게 제출한 2015년 9월 국감 자료)

보험연구원의 과거 발표 자료에서도 5년 경과 50.9%, 7년 경과 44.7%, 9년 경과 40.0%로 나타났다. 이처럼 무늬만 종신일 뿐, 종신보험이라고 감히 말하기조차 민망하고 부끄럽다.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종신보험을 섣불리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실손의료보험은 ‘갱신을 통해 100세까지 보장한다’고 호들갑스럽게 광고해 왔는데, 5년차 유지율이 48.5%, 10년차 14.7%에 불과하다. 10년 지나면 85.3%가 이미 해지하였거나 실효되어 무용지물이다. 특히 70대 이후에는 크게 인상된 갱신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유지율이 뚝 떨어진다. 보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변액보험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발표(2016. 11.15)한 ‘변액보험 가입자가 알아 둘 필수정보 7가지’에 의하면 2016년 3월 기준 연 수익률 3.5%인 변액보험은 3년 지나면 60%, 5년 지나면 44.9%, 7년 지나면 29.8%만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사를 통해 가입한 변액연금은 9년, 변액종신은 13년이 지나야 중도 해지 시 원금손실이 없었다. 이에 “변액보험은 원금보장을 원하는 사람에게 부적합하고 10년 이상 장기 유지함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보험연구원의 ‘생명보험 상품별 해지율 추정 및 예측 모형’(2010년 5월)에 의하면 정기보험이나 암보험 같은 보장성보험은 9년만에 60%가 해지되고 40% 정도만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저축성보험인 연금보험(변동금리)은 80%가량 해지돼 유지율이 23.8%에 불과했고, 변액보험은 가입 후 5년 지나서 이미 64%가 해지됐다.

사정이 이런데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 금융위는 눈 뜨고 보초만 서 있을 뿐, 유지율에 대하여 한마디 말이 없다. 아마 유지율은 관리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보험사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장기 유지율을 발표하지 않고, 당국도 애써 쓴소리 하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만 영문도 모른 채 비싼 보험을 가입해서 보험사 먹여 살리기에 동참하고, 그러다가 보험료 내기 버거우면 스스로 포기하거나 중도 해지해서 손해를 보고 있고, 이런 상황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보험은 가입보다 유지가 더 어렵다. 소비자가 보험금을 받으려면 가입한 보험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보험을 가입할 때는 물론 가입한 후에도 유지율을 체크해야 하는 이유다. 유지율을 체크하기 위해 보험사에 묻고 따져야 하고, 이것은 돈 내는 주인의 당연한 권리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보험사들의 미사여구와 사탕발림에 현혹되어 즉흥 가입, 묻지마 가입할 일이 아니다. 중도 해지할 보험이면 처음부터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보험사들은 발뺌하지 말고 소비자들에게 상품별, 기간별 유지율을 공개해야 한다. 보험사들이 공개하지 않으면 금감원, 금융위가 적극 나서야 한다. 소비자 보호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보험사들의 잘못을 묵인, 방조하는 것이고 나아가 소비자 보호를 회피하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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