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장례식장. (오른쪽부터) 고승원 숭실대 대외협력실장, 우제원 총학생회장. 사진=숭실대학교

독립운동가 고(故) 김태연 애국지사가 조국을 떠난 지 100여 년 만에 귀국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8일 중국 상하이 창닝구 외국인 공동묘지인 만국공묘에서 김태연 애국지사의 파묘행사를 열었다. 숭실대학교는 이곳에 대표단을 파견해 김태연 지사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간직하며 따를 것을 다짐했다.

김태연 애국지사 숭실대 졸업 학사모 사진. 사진=숭실대학교

1891년 황해도 장연 출생의 김태연 지사는 숭실대 8회 졸업(1917년)생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5월 상하이로 망명해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고향에 아내와 네 딸이 있었지만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이 컸다. 김 지사는 몽양 여운형 등과 함께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을 조직해 한인들의 자치 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1920년 구국모험단 참모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 폭탄 등 무기 구입, 일본 관청 파괴 및 일본 관리 암살 등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21년에는 상해의 한인 자녀들의 교육 기관인 인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동포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애국 활동을 벌이다가 그해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만국공묘에 묻혔던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과 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윤현진·오영선 지사 등의 유해가 한국으로 옮겨졌지만 김 지사가 이곳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다.

유족대표로 파묘식에 참석한 조관길 씨는 “1975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김 지사의 셋째 딸)도 외조부님께서 묻혀 계신 곳이 상하이라고만 아셨지 어느 곳인지를 몰랐는데 5년 전 정부에서 외조부님 무덤을 찾았다고 연락이 와 고국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여기 와서 뵈니 감개가 무량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준성 숭실대 총장은 “숭실대는 한국최초의 기독교 민족대학으로 현재까지 84명의 독립유공자를 확인했으며 앞으로도 숭실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함으로써 민족자존의 기치를 세운 선배들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기릴 것”이라며 “숭실대는 김태연 지사의 뜻을 계승해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교육으로 기여하는 통일선도 대학으로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897년 평양 숭실학당으로 시작한 숭실대는 1983년 일제강점기 때 대학으로서는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고했다. 조선총독부 경찰이 숭실대를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소굴‘이라고 칭할 정도로, 숭실대는 수많은 항일 민족 운동가를 배출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84명으로 국내 대학 중 최대인원을 자랑한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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