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1일 대형가맹점 수수료율 인상 통보
현대차, 일방적 인상요구라며 가맹계약 해지 통보
소비자 불편초래 예상…극적 타결 가능성도 있어
카드사들이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 인상에 나서자 현대자동차가 지난 4일 ‘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다만 10일부터 계약 해지를 하기로 해 극적인 협상 타결의 여지를 남겨뒀다.
8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신한·KB국민·삼성·롯데·하나카드 등 5개 카드사와 오는 10일부터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카드사들이 현대차의 카드수수료율을 1.8%에서 1.9% 가량으로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현대차는 자신들의 협상 제안을 수용한 현대·씨티·BC·NH농협카드와는 기존 수수료율을 유지한 상태에서 적정 수수료율을 협상하기로 했다.
최근 카드사들은 정부 카드수수료 개편에 따라 연 매출 500억원 초과 대형가맹점에 3월부터 수수료를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현대차는 카드사들의 일방적 수수료 인상에 이의제기 공문을 보내 현행 수수료율을 유지한 상태에서 협상을 요청했다. 수수료율을 정한 뒤에 소급해서 적용하자는 제안이었다. 또 수수료율 인상에 대한 근거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카드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만약 수수료 인상을 해야 한다면 그 근거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카드사들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면서 “협상 제의도 했지만 무조건 3월 1일 자로 올리겠다고 해 해지 통보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고객의 불편을 감안해 유예기간 일주일을 두고 10일 이후부터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재 자동차 판매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카드수수료율까지 인상된다면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6일 자동차업계 지원사격에 나서 카드사들이 일방적으로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해 자동차업계 경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자동차업계가 판매부진 등으로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있다면서 특히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5%로 IFRS(국제회계기준) 적용 이후 최저 실적이며 금융 등을 제외한 자동차부문의 영업이익률은 이보다 더 낮은 1.4%라고 강조했다.
한국GM도 4년간 총 3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는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판매가 급감했으며 쌍용차도 2017년 이후 지속적인 적자를 내고 있고 르노삼성 또한 판매실적이 전년대비 30% 이상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자동차업계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감안해 신용카드사들은 수수료율 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수수료율을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카드사로서도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 인상안을 철회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의 카드수수료 개편안에 따라 연간 7000억원 이상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당국의 수수료율 역진성을 해소한다는 방침에 역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카드사들이 이번 현대차와의 협상에서 물러설 경우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통신사, 유통업계 등 대형 가맹점과의 협상에서도 불리해진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의 수수료율 인상 협상이 관철되지 않으면 다른 대형가맹점과의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면서 “카드사 입장에서도 차별을 둘 수 없을 뿐아니라 대형가맹점들도 현대차와 똑같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자동차업계를 지원사격했다면 바로 다음 날인 7일에는 여신금융협회가 카드업계를 지원사격했다.
여신금융협회는 이날 성명서에서 정부가 발표한 가맹점수수료체계 개편안은 금융당국, 가맹점, 소비자(카드회원), 카드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가맹점수수료의 역진성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방안임을 강조하면서 대형가맹점이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가격결정에 있어 합리성과 공정성, 위법성 여부는 금융당국이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점검할 예정으로 대형가맹점은 가맹점 계약해지나 카드거래 거절 등으로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하거나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대형가맹점이 이번 가맹점수수료 개편 취지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해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카드업계가 단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대목으로 지적된다. 현대·씨티·BC·NH농협카드는 현대차의 카드수수료율을 유예하고 협상을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로부터 해지통보를 받은 신한·KB국민·삼성·롯데·하나카드 등 5개 카드사 중에서도 수익성 악화를 모면하기 위해 현대차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는 회사가 나올 수 있다”면서 “홀로 가맹계약을 해지당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카드사들이 줄줄이 현대차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10일부터 계약해지라는 유예기간을 남겨뒀기 때문에 협상 타결의 여지는 남아있는 상황”이라면서 “차선책을 마련해 극적으로 타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드사와 대형가맹점간 ‘네 탓’ 공방에 중간에 낀 소비자들만 불편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5개 카드사와 현대차간 계약이 해지되면 현대차를 구매하려는 고객은 현대·씨티·BC·NH농협카드로만 결제하거나 계좌이체 등 현금으로 결제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축소되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씨티·BC·NH농협카드가 없는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카드를 신규 발급하는 등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협상 통로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면서 “정해진 유예기간까지 최대한 고객의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