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600여종 가양주, 일순간 사라지고 日 잔재만 남아
주류업계, 일제강점기 시절 말살된 ‘우리 전통주’ 복원 노력

국순당이 조선시대 차례주 신도주(햅쌀술)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전통 차례주인 ‘청주(淸酒)’가 여전히 일본에서 건너온 ‘정종(正宗)’으로 통용되고 있다.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상에 남아있는 일본 잔재 청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종은 우리나라 청주와는 명백히 다른 술이다. 정종은 양조장에서 만드는 일본식 청주(사케)의 상표로 나온 ‘마사무네(まさむね‧正宗)’ 제품이 일제강점기 국내로 넘어오면서 보통명사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전통주는 사시사철 수확하는 재료를 활용해 가정에서 만드는 술 ‘가양주(家釀酒)’를 일컫는다. 가정마다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누룩의 맛도 천차만별이었고 그 덕분에 전국적으로 다양한 전통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우리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통해 전통주도 함께 말살시켰다. 특히 1917년 가양주 제조가 전면 금지되면서 대부분 가정에서는 술을 빚기 어려워졌고 우리 전통주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됐다.

대신 명절 차례상에는 당시 일본에서 국내로 넘어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정종이 자리했다. 이후 우리 삶에 스며든 정종은 우리 전통 차례주인 ‘청주’를 일컫는 대명사처럼 통용됐다.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전통주 제조는 어려웠다. 과거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주세법 골격이 그대로 유지됐고 1946년 미 군정청은 우리나라 식량 사정을 고려해 막걸리 주조 금지령을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5년 정부가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을 발표하면서 쌀로 술을 빚는 것은 전면 금지됐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통주는 40여종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점차 사라져 가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고조된다. 국제 경기를 앞두고 주류업계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술을 만들어보자는 집념 아래 사라진 전통주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특히 전통주 명가로 불리는 국순당은 고려말 유행하던 ‘생쌀발효법’을 복원해 백세주를 탄생시켰으며, 지금까지도 전통주 복원에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순당은 법고창신 브랜드를 통해 2008년부터 잊혔던 우리의 전통주를 복원해 되살리는 ‘우리 술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술 복원 대상은 1단계, 춘하추동 및 세시풍속과 연관된 세시주(절기주) 위주로 이뤄지다가 2009년부터 2단계, 시대별 대표 명주(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도 복원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국순당이 복원한 이화주, 자주, 송절주, 청감주. 사진=국순당 법고창신 홈페이지 갈무리

이 같은 사업을 통해 국순당은 지금까지 총 24종의 전통주를 복원했다. 대표적으로 ▲이화주(배꽃이 필 때 담그는 고려시대 막걸리) ▲자주(고려시대 명주, 청주에 한약재를 넣어 중탕한 약주) ▲신도주(연중 첫 수확한 햅쌀을 이용해 담근 흰 술) ▲송절주(조선시대 명주, 그 해에 자란 소나무의 여린 가지의 마디를 재료로 하는 약주) ▲청감주(조선시대 명주, 술로 술을 빚는 독특한 제법으로 맑고 단맛이 나는 청주) ▲사시통음주(사시사철 어느 때고 밤을 새워 마실 수 있는 술) 등이 있다.

이어 우리 전통 차례주인 청주 주조에도 나섰다. 국순당이 생산하는 백세주, 예담 등 차례주와 금복주에서 만드는 경주법주, 화랑 등은 이제 일반 시민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특히 예담은 국순당이 우리나라 최초의 차례·제례 전용주로 개발한 것으로, 주정을 섞어서 빚는 일본식 청주와는 달리 전통방식으로 빚은 100% 순수 발효주다. 2005년에 출시된 예담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왕실의 ‘종묘제례’에서도 13년째 전용 제주로 사용되고 있다.

금복주의 경주법주는 주정과 전분을 사용하는 일반 청주와는 달리 우리 밀 누룩과 100% 우리 쌀만으로 장기간의 저온 발효와 숙성을 거쳐 주조된다. 특히 술이 돼 나오기까지 100일이나 걸려 예로부터 백일 정성으로 빚은 술이라 하여 ‘백일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청주와 달리 데우지 않고 10도 정도로 차게 해서 마시면 순미주(純米酒) 특유의 깔끔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경주법주는 우리나라 대표 명주(銘酒)로 일컬어 왔다. 여기서 새길 명(銘)자를 붙인 이유는 특별한 방식으로 만든 술이나 품질이 좋은 술을 뜻하는데 유래한다.

경주법주는 신라시대에 귀족과 화랑도들이 즐겨 마시던 궁중비주로 술을 빚는 방법과 음주 법에 엄격한 법도가 따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지난 반세기 동안 외국 국가원수 방문 시, 각종 국가차원 행사시 만찬용, 선물용으로 쓰일 만큼 품질의 우수성이 증명됐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급 전통명주로 자리매김 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통주는 복원이 어렵고 복원 후에도 시장성이 불확실하다. 하지만 국순당은 단순히 전통주 복원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 잔재인 ‘정종’이라는 단어 자체를 뿌리 뽑고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쓴다는 포부다.

국순당 관계자는 “전통주 복원 사업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라진 전통문화를 복원한다는 사회적 책임으로 지속 추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복원된 전통주는 정확한 제조방법이나 발효 환경 등을 매일 기록해 일반 소비자에게도 공유된다. 이밖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과 ‘우리 술 품질향상 및 대중화 촉진을 위한 기술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우리 술 복원 개발 사업에 힘을 모으고 있다.

금복주 관계자는 “경주법주 주조 비법이 명맥만 유지한 채 경주 일부 민가로 전해져 내려오다 1972년 한국을 대표하는 국주(國酒)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당시 경주에 현대적 시설을 갖춘 경주법주(주)가 설립 되면서 예전의 제조 비법을 복원, 발전시켜 지금의 경주법주를 주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에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빼앗긴 청주를 되찾기 위해 한국형 청주제조기술 실용화 프로젝트 등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으로 산학연관 협업을 통해 전통주 신기술 시범사업을 2014년 18개소, 2016년 35개소, 2018년 52개소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정석태 농진청 발효가공식품과 연구관은 “앞으로도 꾸준히 전통주 복원에 힘쓸 것이다”며 “복원한 전통주를 산업화해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제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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