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환급금 적게 준 돈 모아 유지계약 보험금 지급
해약 많아야 보험사에 유리한 구조
무해지보험 경험 없어 해지위험 부각…재보험 활용해야

사진=연합뉴스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은 저렴한 보험료로 인해 가입여력이 높은 반면 해지 시 소비자가 손실을 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또 기존의 보장성 상품과 달리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의 보험료 산출에 반영되는 해지율이 새로운 위험으로 부각 돼 이에 대한 관리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은 약 85개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됐고 그 종류도 종신보험뿐만 아니라 질병보험, 암보험 등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타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40여개)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질병보험(17개), 암보험(15개) 순이다.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이란 보험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해지환급금이 지급되지 않거나(무해지) 일반 보험보다 낮은 해지환급금을 지급(저해지)하는 보험 상품을 말한다. 적립금으로 쌓아두는 금액을 없애거나 줄여 소비자들이 납입하는 보험료를 낮춘 것이 특징이다.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이 활성화된 이유는 2015년 이후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보험사들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통상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 보험사의 예정이율도 같이 하락하고 예정이율 하락 시 보험료가 상승해 결국 보험 수요 감소로 이어져 상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위원회가 보험업계의 의견을 반영한 보험업감독규정 및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안을 개정해 순수보장성이며 20년 이하 납입기간인 상품에 대해서만 허용하던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을 모든 순수보장성 상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 해당 상품 출시를 유도한 이유도 한몫했다.

그러나 보험료가 저렴하다고 해서 쉽게 가입을 결정했다가 계약유지를 하지 못하면 그 손실은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은 해지하는 고객의 환급금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신 지출하지 않은 환급금을 남아 있는 고객의 보험금 지급에 사용하는 구조”라면서 “이 때문에 일반 상품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장점이 있지만 보험기간 중 계약을 해지할 경우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매우 낮은 환급금만을 돌려받게 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 보험료 산출의 중요한 요소인 해지율이 아직 초기여서 해지율 가정의 적정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전통적인 보험 상품은 보험사고 발생확률인 예정위험률, 미래 현금흐름의 현가를 계산하기 위한 예정이율, 예정사업비를 기초로 보험료를 산출하기 때문에 해지율은 보험료 산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의 보험료는 해지한 소비자 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지율이 보험료 산출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제해지율이 예정해지율보다 높아서 지급되지 않은 해약환급금이 예상보다 많으면 보험회사의 해지이익이 발생하지만 실제해지율이 낮으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이 부족하게 돼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해지자가 많으면 이익이 발생하지만 해지자가 적으면 그만큼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보험회사의 손실은 더 많은 소비자의 불이익으로 전가되기 쉽다. 보험회사가 상품 개발이나 보험료 산출 시 보수적으로 요율을 적용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북미 시장에서 사망보험을 중심으로 무해지 환급 상품이 출시돼 초기에 양호한 판매실적을 거뒀지만 예정해지율에 비해 경험해지율이 낮아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도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해지 환급 상품 개발을 검토했으나 해지율 예측의 어려움과 캐나다의 실패 사례를 고려해 개발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는 우리나라도 종신보험뿐 아니라 질병보험, 암보험 등에서도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어 해지율 변동에 대한 해지위험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해지위험은 계약자 행동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위험이나 사망·장수·질병위험의 보험위험보다 위험 관리가 어렵다”고 밝혔다.

보험 상품 판매 시점에 경제 및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계약자의 행동변화를 장기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해지위험을 전가하는 재보험 활용을 제시했다.

해지위험 재보험은 일반적으로 해지위험의 노출을 감소시키는 것 외에 보험위험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보험회사들은 무해지·저해지 환급 상품과 관련한 경험이 없어 해지위험 등 계약자 행동에서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만큼 해지위험 재보험 활용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재보험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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