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대상 단지 16개, 곳곳 갈라져도 땜질 보수가 전부
집값 안정에 뒷전 밀려난 정비사업…“주민 고충 나몰라라”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경. 사진=배수람 기자

지어진 지 오래된 노후건물에서 잇달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30년 이상 노후아파트 주민들의 불안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사우나 건물 화재는 불과 19분 만에 불길이 잡혔음에도 3명이 사망하는 등 91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사고가 난 건물은 1980년 준공된 7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로 다중이용업소로 등록된 지상 1~3층까지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

불길이 시작된 4층 사우나에는 안전사고를 대비할 만한 아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층마다 제대로 된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었다면 인명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노후건물이 화재·붕괴 등 안전사고 발생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자 재건축 연한을 훌쩍 넘긴 노후단지 입주민들은 관련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노후주택 375만호는 내년이면 지어진 지 30년을 초과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올려진 1990년대 준공된 551만9000호 주택은 향후 10년 동안 속속 30년에 접어든다.

특히 재건축 기대감이 한차례 무너진 여의도 일대 아파트 단지들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여의도 지역 재건축 대상 단지는 16개에 이른다. 대부분 재건축 연한 30년을 채운 것은 물론 준공된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도 즐비하다.

해당 단지들은 신탁방식을 도입해 속도감 있는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용산·여의도 일대를 통째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을 내세우며 번번이 심의를 보류했다. 이어 집값 안정 등을 우선해 여의도통개발 역시 무산되면서 해당 단지들의 재건축 사업은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전경. 사진=배수람 기자

이곳 주민들은 집값 안정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안전사고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단지 곳곳에서 곰팡이, 결로, 녹물, 갈라짐 등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양아파트(1975년 준공)에 40년째 거주 중인 A씨는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40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며 “주차공간도 협소하고 화재 장치도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점검한다는데 눈으로 확인한 적도 없다 보니 다른 노후건물처럼 불이 나면 그대로 죽는 게 아닌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또 “재건축·재개발로 시세차익을 거두는 사람들은 다주택자뿐이지 않냐. 1주택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값 오를까 봐 정비사업을 못 하게 막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3년 전 시범아파트(1971)로 이사 온 B씨는 “전세로 사는 세입자에게 정비사업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으로 인식돼 그동안 좋게 바라보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건물 외벽에 금이 가 있는 것은 물론 콘크리트 지지대가 훤히 보이는 곳도 직접 목격하면서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재건축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각 세대에서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일부 보수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는 동안 안전하게 살고 싶은 건 공통된 생각이다. 스프링클러나 완강기, 화재감지기 같은 장치들이 제대로 설치는 돼 있는 건지, 작동은 하는지도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안전문제와도 직결된 만큼 주민들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전문가들 역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다만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정비사업으로 시장가격이 들썩였던 것을 감안하면 쉽지는 않다고 제언했다.

전재범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9·13대책 이후 부동산시장 가격이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완전히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섣불리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안전상의 문제가 명확하다면 1:1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등 방법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입주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으면 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교수는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노후건물과 관련해 대대적인 안전설비 확충이나 시스템 마련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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