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자주독립을 외친 역사적인 날이죠.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낭독을 시작으로 그해 5월까지 전국에서는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만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른데요.

파이낸셜투데이는 항일 민족운동의 중추 역할을 한 서울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톺아봤습니다.

3·1운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상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는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교도소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복역 당시 심한 고문과 매질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들과 옥중 만세운동을 불사했는데요. 잔혹한 고문으로 결국 1920년 9월 순국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일제 침략에 저항한 16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대규모 수용시설인데요. 현재까지도 이들이 갇힌 옥사와 저항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고려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1919년 3·1운동의 발상지로 더욱 유서 깊은 곳인데요.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이곳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자 곳곳에서 독립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종로 네거리를 가득 메우며 만세 행렬을 이었다고 합니다.

서울 중앙고등학교는 일제 침략이 노골화된 구한말 신문학을 통해 교육구국(敎育救國)·교육입국(敎育立國)의 취지에서 우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한 건학 이념을 반영해 높은 이상과 강건한 용기, 성실한 봉사 정신을 가진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합니다.

독립선언문이 작성된 곳이기도 한 이곳 중앙고 학생들은 일제강점 당시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요. 1922년에는 교사였던 조철호 선생에 의해 조선소년군이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만해 한용운의 옛집 심우장(尋牛莊)은 서울 성북구 일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한용운 선생은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된다며 햇살이 들지 않는 응달진 언덕에 북향으로 심우장을 짓습니다. 3·1운동 이후 민족대표 대부분은 일제의 탄압과 회유로 변절했으나 만해는 지조를 꿋꿋이 지키며 조선 청년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죠.

3·1운동 주모자로 3년간 옥살이를 했던 한용운 선생은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심우장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현재까지도 심우장에는 그의 친필·서적들이 보존돼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이 사용하던 개인 사저였습니다. 임시정부가 환국하고 난 뒤 백범은 매년 삼일절마다 이곳에서 기념 행사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백범은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서거하기까지 경교장을 집무실 겸 숙소로 이용했습니다.

현재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초간본, 혈의와 데드마스크 등 의미 있는 유물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역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과거 일본 식민지배의 상징이었던 남산 조선신궁 터에 마련돼 있습니다. 1970년 개관한 이래 2010년 신축한 기념관은 단지 동맹을 상징하는 12개 유리기둥을 묶은 형태의 건물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곳 기념관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부터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과정, 그가 순국하기까지의 전 생애가 전시돼 있습니다.

망우리공원은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소파 방정환, 호암 문일평, 위창 오세창 등 애국지사들이 한 곳에 잠든 공간입니다. 구한말 전국에서 모인 의병들이 일본군과 혈전을 치른 장소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태원합장비와 분묘 합장 표지비도 이곳 공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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