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육체노동 가동연한 60세→65세로 상향
보험금 지급액 늘어 보험료 인상 요인
보험료 인상은 약관 개정해야 가능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와 보험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노동가동연한’은 노동에 종사해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으로, 보험가입자의 피해 상대방이 무직자나, 학생, 어린이, 주부일 경우 보상 규모에 대한 기준이 된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피해자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 시에 만 60세를 기준으로 소득 상실분을 보상했다.

이번 판결은 2015년 8월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4살 아들이 사망하자 박 모씨 가족이 수영장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액과 위자료 합계 4억9354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 대한 것이다.

1·2심에서는 기존 판례를 따라 박 씨의 아들이 성인이 된 뒤부터 60세가 될 때까지 육체노동에 종사해 벌었을 수익을 2억8338만원으로 인정한 뒤 수영장 업체의 과실비율을 60%로 보고 1억7416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박 씨는 기존 판결이 선고된 1980년대와 비교할 때 고령사회 진입과 평균수명의 연장 등 사회·경제적 여건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가동 연한 문제가 산업계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공개변론을 통해 각계의 주장을 청취한 대법원은 기존 60살이던 육체노동 가동 연한을 65살로 높여야 한다는 데 다수 의견이 모여 박 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1989년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이후 30년 만이다.

보험업계는 이번 판결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특히 손해보험의 자동차보험 대인배상과 무보험차상해 보험금 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손해보험과 달리 생명보험의 경우 사망 보험금 지급 기준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정액제인 데다 실손보험도 의료비 보장 중심이기 때문에 노동가동연한 상향에 따른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의 자동차보험 대인배상과 무보험차상해 담보는 사고로 사망과 후유장해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따른 손해액과 부상으로 인해 휴업하게 된 손해액을 따져 보상하는데 보험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일실수입 계산’은 ‘1일 임금×월 가동일수×가동연한에 해당하는 개월수’로 계산된다. 여기서 가동연한에 해당하는 개월수가 최대 60개월(5년) 늘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육체노동자의 하루 수당 기준은 중소기업중앙회와 건설협회가 제시한 9만5000원으로 만35세 전업주부나 일용직 근로자가 본인 과실 없이 사망했을 경우 한 달 근로일수 22일(판례 기준)에 60세까지 남은 날짜를 곱하면 2억7700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가동연령이 65세로 늘면 사망 보상액은 2500만원 늘어난 약 3억200만원이 지급된다.

보험개발원도 가동연한이 상향되면 연간 1250억원의 교통사고 보상금이 추가로 지급돼 자동차 보험료 1.2%의 인상요인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이밖에 배상책임 보장을 제공하는 보험상품인 화재배상책임, 생산물배상책임, 임원배상책임 등의 보험금과 보험료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다수의 보험사들이 배상책임 보험금 산정을 자동차보험과 비슷한 기준에 따라 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동연한 연장은 배상책임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보험업계는 보험 지급금 증가로 인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보험료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동연령 65세 기준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려면 보험 표준약관부터 개정돼야 하기 때문에 당장 보험료가 오르지는 않는다”면서도 “약관 개정이 이뤄진다 해도 금융당국이 적정보험료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가동연령 상향에 따라 월 가동일수에 대한 기준도 현실적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도시일용인부 월 가동일수는 22일, 농촌일용노임 월 가동일수는 25일, 건설업 일용근로자의 월가동일수는 15일 정도로 보고 있지만 2017년 기준 실제 월평균 근로일수는 건설업 전체 17.6일, 건설업 임시일용직 14.4일, 제조업 전체 20.7일, 제조업 임시일용직 15.9일 등 감소 추세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가동연한 연장 판결은 정년연장 관련해서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가동연한과 정년은 법적으로 개념이 다르지만 연관성이 있는 만큼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행법상 정년은 일반직 공무원 60세, 교육공무원 62세, 대학교수 65세, 민간기업 60세다.

그러나 앞서 1989년 대법원이 55세에서 60세로 가동연한을 높이라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정년이 60살로 연장되기까지 19년, 2017년 전면시행으로 민간 사업장에까지 반영된 것은 28년이 걸려 실제로 정년연장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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