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의 統썰] “총성 없는 전쟁”…갈라진 남북 하늘 넘나드는 ‘삐라’
[미니의 統썰] “총성 없는 전쟁”…갈라진 남북 하늘 넘나드는 ‘삐라’
  • 김민희 기자
  • 승인 2019.02.21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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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3년간 뿌려진 삐라, 한반도 스무 번 덮을 양
중단 합의에도 불구, 여전히 계속되는 전단 살포
DMZ박물관에 전시된 삐라. 사진=김민희 기자

70년 분단 중에도 남북 하늘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있다. 우리에겐 ‘삐라’로 더 잘 알려진 대북·대남전단이다.

삐라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심리전 매체로, 총칼이 아닌 말로 상대의 전의를 꺾고 나아가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통상 엽서 크기의 종이에 그림과 메시지를 적어 특정 의미를 전달한다. 전쟁 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승에 기여하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다.

과거에는 북한에서 뿌린 삐라를 들고 경찰서로 향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삐라가 드물어진 건 지난해 4·27판문점 선언 이후다. 남북 정상은 비무장지대를 사실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전단살포 중지’를 합의했다. 그러나 민간 탈북자단체 차원의 살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랑과 랑만이 가득한 서울로”…시대 따라 달라진 삐라

남북 하늘에 처음 삐라가 뿌려진 것은 1950년 6월 28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다.

유엔군은 1200만장의 삐라를 통해 남한 군인의 사기를 북돋고, 주민들에게 유엔군 참전을 알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대로 적군인 북한군·중공군에게는 전의 상실을 유도하기 위한 삐라를 살포했다. 소련·중국과 북한 내부를 가르고 장교와 북한 민간인을 가르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북한군 장병들에게 뿌려지는 삐라는 귀순과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먼저 귀순한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상을 그리거나, 구체적 귀순방법을 설명하는 주제가 이 시기 삐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삐라는 보통 비행기로 직접 살포하거나 폭탄에 넣어 투하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한국전쟁 3년간 하늘에서 뿌려진 삐라는 28억장에 달하는데, 이는 한반도를 스무 번 덮고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몇 바퀴 감을 정도의 분량이다.

휴전 이후 남북 간 총성은 멎었지만 종이 폭탄 투하는 멈추지 않았다. 남한은 국방부가, 북한은 인민무력부가 각각 삐라 살포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공산주의 선전의 매개체로 삐라를 활용했다. 60년대 초반만 해도 북한은 남한에 비해 경제적 사정이 좋았고, ‘사회주의 지상낙원’ 선전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사진=DMZ박물관

이 시기 종종 삐라에 현혹돼 월북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잠시에 그쳤다. 이후 남한은 경제 발전에 힘입어 북한과 대비되는 삐라를 제작했다. 백화점 쇼핑,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등 자유롭고 여유로운 생활상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연예인 사진을 활용해 북한군을 유혹하는 삐라를 대량 살포했다는 것이다. 대개 수영복 차림의 젊은 여성과 자극적 문구를 내세웠다. 월남할 경우 삐라 속 아름다운 여성과 자유롭게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삐라 살포 효과 미미…북미관계 따라 변화 예상”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삐라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0년 6·15회담에서다. 북한이 ‘심리전 중단’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300만명에 달하는 아사자가 발생했고, 경제난으로 인해 급격히 탈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북한 체제를 불신하기 시작한 주민들이 증가하던 북한에게 대북삐라는 위협적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 정상의 합의 하에 공식적 삐라살포는 중단됐지만, 민간탈북자 단체는 ‘북한 인권 개선’을 명분으로 여전히 대북 삐라를 살포하고 있다. 이들은 대형 풍선에 북한 독재체제를 비판하는 삐라와 남한의 인기드라마·공연 영상을 담아 날린다.

최근 대형 풍선을 날리는 방식도 발전해 한 번에 1만~6만장의 삐라를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행기로 직접 살포했던 과거와 달리 대형풍선은 북서풍의 영향으로 북한 땅에 닿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자들은 50~60년대 휴전선 근처의 군인들이 많이 넘어왔다. 대북삐라가 당시 인민군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최근 살포되는 삐라는 북한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풍선 속에 MP3나 USB 등을 담아 날리기도 하는데, 편서풍과 북서풍이 불어 북한 내륙까지 닿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북삐라살포 금지 법안 발의를 통해 민간탈북단체 제제에 나서고 있다. 정부에서도 경범죄 등을 적용해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며 “그러나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는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향후 북미관계 발전에 따라서도 삐라 살포 합의 내용은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출처: DMZ박물관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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