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기자 등 다양한 사회경험, 복귀 후 초고속 승진 눈길
현대글로벌서비스 발판삼아 탁월한 경영능력 입증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새로운 주인으로 잠정 확정되면서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부사장은 사업 보폭을 빠르게 넓히면서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현대중공업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에 오른 그는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을 겸하고 있다.

앞서 정 부사장은 자신의 주도로 설립한 현대글로벌서비스(2016)을 통해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선박을 사후 관리한다.

현대글로벌서비스 2017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403억원, 564억원을 달성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액 4145억원, 영업이익 729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전년도 연간 목표치로 설정한 매출액 4100억원도 넘어선 수준이다.

설립 2년 만에 연간 목표치를 달성하고 실적 개선을 이루면서 정 부사장의 경영능력은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현대글로벌서비스 외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정기선 부사장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발판 삼아 자신의 입지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M&A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경영승계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자취

정기선 부사장은 1982년 5월 3일 정몽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몽준은 1982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데 이어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으로 취임했다. 1988년 제13대~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7선 의원이다. 정몽준은 현재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어머니 김영명 씨는 재단법인 예올 이사장이다. 조부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고 외조부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다. 형제로는 여동생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과 정선이, 남동생 정예선이 있다.

정 부사장은 1998년 청운중학교, 2001년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1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2005년 졸업했다. 그는 대학기간 중 ROTC 43기에 지원해 졸업 후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ROTC 13기 출신인 정몽준 이사장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7년 ROTC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정 부사장은 크레디트스위스(CS) 인턴 사원과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정몽준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라며 기자 생활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11년까지 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MBA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오랜 시간 다방면에서 활약한 정기선 부사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영 승계 과정을 밟는다.

특히 2014년 10월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상무까지 승진했으며 2015년 11월 인사에서는 불과 33세 나이로 전무 승진에 이름을 올리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후 정 부사장은 기존 맡아오던 현대중공업 기획, 재무부문장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까지 핵심 부서를 모두 총괄하게 됐다.

정 부사장은 상무‧전무 기간 국제무대로 발을 넓혔다. 2015년 그는 국제 3대 가스 분야 행사로 꼽히는 ‘가스텍’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같은 해 현대중공업-아람코 간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에도 직접 서명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수차례 방문하며 아람코와 함께 ‘합작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IMIC)’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최고의 생산능력을 자랑하는 해당 조선소는 지난해 3월 착공에 들어갔다. IMIC 조선소 지분은 아람코 50.1%, 람프렐 20%, 바흐리 19.9%, 현대중공업 10% 정도다. 현대중공업은 IMIC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되는 선박에 수주 우선권을 확보하고 조선소 운영에 참여해 여러 부가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어 정 부사장은 2016년 현대중공업-제너럴일렉트릭 사업협력을 맺고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와 합작 조선소를 세우는 데 협력하겠다고 합의했다.

현대중공업. 사진=파이낸셜투데이 DB

이 같은 국제적인 행보를 잇던 정 부사장은 2017년 11월, 현대중공업 부사장이자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지난해 11월에는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았다.

정 부사장은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에 오르기 직전부터 경영 전면에 조금씩 얼굴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 그는 로봇사업과 관련해 현대중공업지주와 독일 쿠카그룹의 업무협약에 직접 나섰다. 쿠카그룹은 로봇기업 중 세계 점유율 3위를 자랑한다. 같은 해 8월에는 현대중공업지주가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과 의료빅데이터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일명 ‘정기선 경영능력 시험대’로 불리는 현대글로벌서비스에서는 친환경 선박 사업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최근 환경규제 강화에 따라 친환경 선박 개조시장을 성장시켜 미래먹거리를 발굴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국제해사기구(IMO)의 새 환경규제를 앞두고 스크러버(환산화물 세정장치)와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BWTS) 설치공사 등을 잇달아 수주하고 있다. IMO는 2020년부터 선박 배출가스 내 황산화물(SOx) 비율을 기존 3.5%에서 0.5%까지 대폭 축소하는 규제를 시행 예정이다. 2022년까지 현대글로벌서비스는 매출 2조원, 영업이익 4030억원, 수주 23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해외법인 설립도 꾸준하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유럽·미국에 이어 작년 11월 싱가포르에 3번째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현재는 콜롬비아에까지 신규 법인 설립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 부사장은 신사업 발굴을 비롯해 로봇사업 확대, 업계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CES 2019에도 처음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사건 사고

2015년 현대중공업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정 부사장이 당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자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이를 오너 일가 특혜로 간주하고 비판했다. 2013년 현대중공업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복귀한 지 불과 2년 만에 전무에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는 “역시 최대주주 장남은 달랐다”며 “회사가 말하는 혁신이 노조 임금은 틀어막고 대주주 장남에게 3년 만에 전무 명함을 안겨주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는 연일 사상 최악의 위기라 떠들고 있는데 경험이 부족한 초짜 전무에게 실질경영을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다”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정씨 일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는 2016년 정 부사장에게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 발표를 요구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극심한 일감 절벽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제때 이뤄내지 못하고 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까지 단행한 바 있다.

또한 오너 일가에게 부당하게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영진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동안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재원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정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증인 신청명단에 오르기도 했으나 장기돈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본부 사업대표 부사장이 대신 섰다.

국감에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대중공업이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알짜 사업 분야와 자사주를 지주에 몰아줬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4월 현대중공업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으로 4등분했다. 이 과정에서 지주의 현대중공업 지분은 13.4%에서 27.8%로 뛰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신주와 현대중공업의 자사주를 맞바꾼 것이다.

같은 원리로 정몽준 이사장의 지주사 지분은 10.2%에서 25.8%로 늘었고 정기선은 지주사 지분 5.1%를 확보해 3대 주주가 됐다.

제 의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2000~2008년까지 자사주를 사는 데 들인 돈은 1조50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일부를 2009년부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처분하고 남은 9670억원 규모의 자사주가 현대중공업지주에 돌아갔다.

◆평가

정 부사장은 일찍이 경영승계에 뛰어든 다른 재벌 3세와 달리 컨설턴트, 기자 등으로 다양한 외부 경험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그의 탁월한 경영 안목과 실무능력 등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도 그의 사회경험을 통해 비롯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거나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직원들에게는 스스로 낮추고 말을 높인다고 전해진다.

다만 아직 내로라할만한 결과물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우조선해양 M&A에 세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다. 해당 인수합병 건이 정 부사장의 경영승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그도 사활을 걸고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투데이 제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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