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26만개소 달하는데 흡연구역 총 63개소 불과
주민들 흡연구역 설치 기피, 부지선정부터 난항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금연 정책을 강화하면서 비흡연자를 위한 각종 제도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흡연자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보행 중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돼 앞으로 흡연자들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일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횡단보도 등 다수의 사람이 지나다니는 보도와 보도 가장자리 구역, 산책로, 골목길 등 보행자 통행이 예상되는 장소에서 보행 중 흡연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할 경우 흡연자들은 길거리 흡연 시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이에 흡연자들은 무분별한 금연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부스 등 공간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금연구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흡연구역 확충은 잰걸음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금연구역은 2017년 기준 26만5113곳에 달한다. 이는 2014년 11만8060곳에 비해 2배 이상(약 15만곳) 늘어난 수준이다.

서울시 서초구 사당역 인근 개방형 흡연구역.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서울시 전역에 설치된 실외 흡연구역은 63개소(개방형 43, 폐쇄형 5, 완전폐쇄형 15)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설치한 것은 25개소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38개소는 모두 100% 민간자본으로 설치된 것이다.

흡연자 A씨는 “흡연구역이 턱없이 부족한데 무조건 금연구역만 늘리고 이제는 길거리 흡연까지 과태료를 부과한단다”며 “금연구역이 느는 만큼 충분한 흡연구역을 만들어주면 간접흡연 등 문제로 흡연자도 눈치 보는 일이 줄 것 같은데 너무 흡연자만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흡연자 B씨는 “흡연구역을 설치하고 잘 관리해준다면 대부분 흡연자는 알아서 흡연구역을 찾아가 담배를 피울 것이다”며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골목이나 사람들 통행이 덜한 곳을 찾아 숨어 피우기 바쁘다. 앞으로는 길에서 담배를 꺼내는 것도 손가락질 받을 상황에 놓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흡연구역 설치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문제는 해당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울시 전역에 설치된 흡연구역은 ‘성동구 성수역 2번 출구 후면’ 단 1곳에 그쳤다. 이는 2017년 사업이 이월돼 시행된 것으로 실질적으로 전년도 흡연구역 설치 사업 실적은 전무하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흡연구역 설치는 각 자치구에서 공모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인데 대부분의 자치구가 부지선정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며 “흡연구역 설치를 위해 인근 거주민들이나 상인들에게 설문을 진행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 공모 자체가 행해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흡연부스 설치를 기피하는 이른바 ‘님비현상’까지 빚어지자 서울시는 흡연구역 관련 예산 편성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6~2017년 흡연구역 설치와 관련해 연간 예산은 약 5억원 정도였으나 현재는 예산을 전액 삭감한 상태다.

이에 전문가들은 비흡연자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는 만큼 흡연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흡연자를 내몰기만 하는 정책은 되레 비흡연자들까지 간접흡연의 고통으로 모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연건물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데 흡연구역을 설치하지 않으면 결국 노상에서 흡연하는 흡연자가 늘어나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명확히 구분 지어 달라는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다”며 “흡연구역을 설치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한다면 보행 중 흡연도 자연스럽게 줄어 보행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도 줄어들 것이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제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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