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지?”…식량난이 만든 독특한 명절 인사
윷놀이·연날리기·씨름 등 민속놀이 문화 크게 발달

설 명절 평양 시내 모습. 사진=연합뉴스

70년 분단의 시간만큼 남북한은 명절을 쇠는 풍습과 문화도 다르게 발달했다. 북한 주민들은 떡국 대신 전통음식 편수를 먹고 윷놀이·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즐기며 음력설을 보낸다.

북한의 명절은 크게 국가 명절(김일성·김정일 생일)과 민속명절(설·추석 등)로 나뉜다. 음력설은 1967년 김일성 주석이 ‘봉건 잔재’라 일컬으며 철폐한 바 있다. 이후 1972년 성묘가 허용됐고, 1989년 다시 음력설과 추석이 민속명절로 부활했다. 올해 음력설은 남북 모두 2월 5일이다.

북한에서는 양력설과 음력설을 모두 챙긴다. 주민들은 차례와 조상 성묘에 앞서 국가지도자 동상 참배로 설날 아침을 시작한다. 새해 첫날과 마찬가지로 음력설에도 김일성·김정일 동상 참배는 빠질 수 없는 행사다. 참배 후에는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친척·친지들을 만나기도 하나 명절 음식을 마음껏 즐기지는 못한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과거 설 명절 친척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인사는 “물론 밥은 먹고 왔겠죠”였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은 북한의 현실이 반영된 표현이다. 함경북도에서 넘어온 지 8년 된 한 탈북자는 “밥을 먹지 않고 친척 집에 방문하는 것을 민폐로 여기기까지 한다”며 “음력설을 쇠기 위해 가족이 모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음력설은 명절 분위기가 덜하다. 국가에서 술을 조금씩 나눠줄 때도 있지만 특별히 식량이 배급되지는 않는다. 예외로 지난해에는 설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이 겹쳐 다과 한 봉지와 식용유, 신발 한 켤레 배급이 이뤄졌다.

특히 쌀이 귀해 설 대표 음식인 떡국을 차려 먹지 못하는 곳도 있다. 이에 주민들은 북한 전통음식인 ‘편수’를 만들어 먹는다. 편수는 만두와 비슷한 모양으로 지역에서 많이 나는 나물로 속을 채운다. 따뜻한 떡국과 달리 차가운 육수에 말아먹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시루떡·부침개·전 등을 만들어 먹는 것은 남한과 다르지 않다.

반면 평양 부유층은 떡국을 배달시켜 먹기도 하며 꿩고기 국수와 신선로·철갑상어·통자라찜 등의 이색음식까지 즐긴다.

전영선 건국대학교 북한문화학과 교수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식량 배급 정도도 다르다. 고기와 달걀, 콩기름 등이 배급되긴 하지만 매년 있는 건 아니다. 사정이 어려울 땐 배급이 안 되기도 하고, 사정이 나아지면 특식이 제공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양에서는 떡국을 주문해 먹기도 하고, 북부지역으로 가면 떡국 대신 만둣국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지역 내 차이를 고려해 설 음식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어려운 현실로 인해 명절 음식문화는 간소화된 반면, 민속놀이는 크게 발달한 모습이다.

북한의 근로자들은 본격적으로 설 윷놀이 대회를 즐긴다. 해당 대회를 위한 인원을 미리 선발하고 탁구대 크기의 대형 윷판도 제작한다. 4개의 윷이 다 뒤집히는 ‘윷’을 ‘슝’이라고 부르는 등 그 명칭에도 남북 간 차이가 있다. 간혹 7~8세의 아이들을 윷놀이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소년 소녀 10명이 각 팀으로 구성돼 게임에 참여한다.

성인들이 윷놀이로 설날을 보낸다면, 학생들은 연날리기를 즐긴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는 설날 전역에서 선발된 학생들의 연날리기 경기가 펼쳐진다. 해당 경기는 연 만들기·연 집단 띄우기·연 재주 경기 등 세부종목으로 나눠 진행된다. 지방에서는 씨름, 팽이치기, 제기차기, 줄넘기 등 남한에서도 익숙한 민속놀이 행사가 열린다.

1994년 처음 ‘텔레비젼 민족씨름경기’를 개최한 북한은 중앙 TV를 통해 해당 경기를 녹화 중계 한다. 황소 또는 송아지를 경품으로 수여해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모습이다. 남한에서는 프로선수들이 주로 참여한다면 북한에서는 민속놀이로 여전히 성행한다.

전영선 교수는 “북한은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직장을 잡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드물다. 때문에 친인척보다 가까이 거주하는 주민들끼리 더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설 명절에 남한처럼 민족대이동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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