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서 보험 약관 개선 주문
약관 수정보다 ‘약관 해석의 원칙’ 지켜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올해 공정경제와 관련 국민들이 일터와 실생활에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국민체감형 과제’를 중점 발굴·추진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경제부총리 등 당‧정‧청 주요 관계자들과 함께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 참석해 2019년도 공정경제 추진계획과 공정경제 성과에 대한 국민체감 방안을 논의했다.

공정경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갑을 문제 등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소비자 권익 보호 등의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공분야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할 수 있도록 주요 공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상시 모니터링, 공공 공사 입찰 시 적정 자재 단가를 반영한 입찰 상한가 설정 의무화, 자율준수 프로그램(CP) 확산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택배 표준약관도 현행 표준 약관상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운송물 분실 또는 연착 시의 손해배상액 한도를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현행 손해배상액 한도는 분실의 경우 50만원(운송물 가액 미기재 시), 연착의 경우 운임액의 200%가 상한선이다.

특히 어려운 보험 약관 개선도 소비자 권익 보호의 과제로 언급됐다.

문 대통령은 “약관만 하더라도 일반 소비자들은 깨알같이 돼 있고 양도 많아 약관을 받는 순간 살펴볼 수가 없다”며 “나중에 피해를 입고 나면 비로소 어디엔가 숨어있는 약관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중을 상대로 하는 약관들은 만들어지는 대로 정부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직권으로라도 약관을 다 입수해 공정위·금융위 등이 법무부·소비자보호원·소비자보호단체 등과 협업해 고쳐나가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약관 사전 사후 검증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들이 알기 쉽도록 용어를 변경하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개선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보험 약관의 어려운 용어, 분쟁·민원이 빈번한 내용 등에 대한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험 약관의 작성·검증·평가체계 전반에 대해 개선하고 보험 약관 검증 시 소비자 참여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보험 약관이 보험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약관을 읽은 소비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불명확해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약관이 어려워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험 약관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가 ‘약관 해석의 원칙’을 무시하고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해석·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관 해석의 원칙이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가장 최근 약관 해석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됐던 사례는 즉시연금 약관 사례와 암보험 약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즉시연금은 일정 금액을 일시에 보험료로 납입하고 납입 즉시 또는 일정 기간 후부터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10년이 지나면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는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상품이다.

이전에는 즉시연금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만 일시납으로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받다가 사망 시 ‘준비금’을 상속받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즉시연금은 연금 명목으로 이자소득세 없이 이자를 받고 10년 만기에는 납입 원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소비자에게 “낸 보험료에 시중금리로 이자를 받고 10년 후 내가 낸 돈 고스란히 돌려받는다”라고 판매한 것이다. 이 화법을 약관에 담다 보니 “연금개시 시점의 적립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금 월액을 매월 계약해당일에 지급”이라고 마케팅 목적에 맞게 표현하고 만기 시에는 “연금계약 적립액(이미 납입한 보험료 해당액)”이라고 적어놨다.

그러나 보험료에는 사업비와 위험 보험료가 부가돼 있어 소비자가 낸 보험료 그대로 적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와 위험 보험료를 차감한 나머지 금액이 적립된다.

더구나 연금 월액은 소비자가 납입한 보험료에 이자율을 곱해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차감한 준비금(연금개시시의 책임준비금)에 이자율을 곱해 산출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원래 생각했던 이자와 차이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수령할 것으로 기대했던 수령액보다 적은 금액을 수령하게 되는 것이다.

암보험 약관도 문제 된 바 있다. 암보험 약관상 ‘직접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 수술 시에 입원비나 수술비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핵심 쟁점은 요양병원 입원이 ‘암의 직접 치료’로 볼 수 있느냐다. 약관에는 ‘암의 직접 치료’를 목적으로 한 입원에 한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는데 어떤 치료가 ‘암의 직접 치료’인지 구체화 돼 있지 않아 분쟁이 생긴 것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의사들도 암환자에게 시행하는 치료는 모두 ‘직접적인 치료’이지 ‘간접적인 치료’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서 “모호한 약관을 보험사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피해와 민원 발생의 근본적인 이유가 어려운 약관 내용이 아니라 약관 해석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소비자 피해 발생은 약관 내용이 어려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모호할 경우 보험 약관을 약관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약관 해석의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금융감독원이 이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인가해준 약관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제대로 유권해석을 해야 하고 유권해석에 따라 지급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사업방법서 위배로 ’영업정지‘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보험사가 알아서 스스로 약관을 쉽고 명확하게 만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부터 학계, 법조계, 연구원 등 외부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보험 혁신 TF‘를 운영해 불완전판매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불명확한 약관 등을 ’소비자 시각‘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혁신 방안을 찾고 있다.

당시 윤석헌 금감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보험 약관이 이해하기 어렵고 약관 내용 자체가 불명확한 경우도 있어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비자의 시각에서 보험 약관을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등 관련 제도를 과감하게 바꿔나갈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