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소유, 사용, 관리하는 동안 발생한 사고로 생긴 손해를 보상해 주는 보험이다. 자동차 소유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자동차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보험기간 1년이 지나면 세로 책정된 보험료를 납입하여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보험료는 준조세와 같다. 지난해 개인용 자동차 보험의 평균 보험료는 연 64만원이었다.

해가 바뀌면 손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차보험을 시작으로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인상해서 소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경기에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가계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올 해도 손보사들이 개인용 자동차 보험료를 인상하기 시작했는데, 지난 16일 현대해상 3.9%, DB손보 3.5%, 메리츠화재가 4.4%를 올렸다. 19일 KB손보가 3.5%, 21일 롯데손보 3.5%, 한화 손보가 3.8% 인상했다. 31일 삼성화재가 3.0% 인상, 다음달 더케이손보가 3.1% 인상할 예정이다.

손보사들은 손해율이 급등하여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고, 지난 여름 폭염과 사고 증가, 정비 요금 인상, 한방진료비 등이 겹쳐 손해율이 악화됐다는 것. 지난해 12월까지 누적손해율은 상위 5개 손보사 평균손해율이 85.8%로, 적정손해율(77~80%)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실제 인상 요인을 따지면 8∼10% 상승이 필요하지만, 이번에 일부만 인상하고 올 하반기 추가 인상할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악화돼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보험료를 인상하여 소비자들에게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손보사들의 보험료 인상 행태를 보면 보험료를 내는 소비자 입장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주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손해율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은 매번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보험료를 인상하지만, 실제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손해율이 어떤 이유로 얼마나 악화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소비자가 부담하므로 그 이유를 당연히 알아야 하고, 손보사는 보험료 인상 전에 소비자에게 해당 내용을 알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손보사도 소비자에게 납득할 내용으로 알린 적이 없다.

손해율 검증은 보험개발원이 전담한다고 하지만 밀실에서 처리할 뿐, 검증 과정과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손보사들은 보험료 인상 후 회사 홈페이지에 손해율을 공시하는 것이 전부다. 이번 보험료 인상이 지난해 폭염과 공임 인상 때문이라면 폭염으로 어떤 사고가 얼마나 증가했고 그로 인해 지급보험금이 얼마나 증가됐는지, 공임이 어떤 이유로 얼마가 인상됐는지 사실대로 밝혔어야 하지만 밝힌 곳이 없다. 이처럼 손보사들은 자신들 먹여 살리는 주인(소비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둘째,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손해율 악화는 손보사 책임이다. 즉, 보험사의 본업은 위험 인수이고 양질계약 확보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것인데, 위험 인수 실패를 소비자에게만 모두 전가하기 때문이다. 손해율 악화는 손보사가 보험료 책정 시 안정성, 충분성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것이고, 여기에 위험 인수에 실패해서 불량계약이 다수 유입된 결과다. 그런데 손보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 요인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책임을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게만 전가하고 있다. 양심 있는 손보사라면 위험 인수 실패의 책임을 일부라도 인정하여 인정한 만큼 자구 노력 (구조 조정, 월급, 상여금 및 주주배당 삭감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자구 노력도 없이 보험료를 인상하며 성과급 잔치, 배당 잔치를 벌이는 것은 불공정하고 잘못됐다.

셋째, 보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소비자(보험계약자)가 부담하므로 당연히 소비자 중심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손보사들은 한 번도 소비자들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일방적으로 인상해 왔다. 손보사들은 그들 입맛대로 보험료를 책정한 후 일방적으로 통보하여 잔소리하지 말고 내라고 하니 소비자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마치 머슴들이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주인에게 더 내놓으라고 겁박하는 것과 같다. 일방적인 보험료 인상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무례하고 도리에 어긋난 짓이다.

넷째,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 덕분에 먹고 산다. 따라서 보험가입자가 주인이고 보험사는 머슴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를 ‘계약자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른다. 보험료 인상은 보험사가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 결과이므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주인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다해야 한다. 보험사 CEO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거나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료 인상으로 심려를 끼쳐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관련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고 알려야 한다. 그런데 어떤 보험사도 행한 적이 없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적도 없다.

다섯째, 언론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은 보험료 인상 전에 언론사에 정보를 슬금슬금 흘려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간을 보며 물타기를 해 왔다. 어떤 손보사도 보도자료를 통해 소비자 에게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직접 설명하고 해당 근거 자료를 제시한 적이 없다. 보험료를 내는 소비자들은 주인이면서도 손보사가 아니라 신문 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하고 있다. 손보사 들이 소비자를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여섯째, 당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 금융위는 보이지 않는다. 금감원은 보험료 인상에 대하여 말이 없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금융위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2015년 10월)을 통해서 보험사간 자율 경쟁으로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보험료 인하는 실종된 지 오래고 갈수록 난해한 상품들만 출시되어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이번에도 손보사가 알려 준 내용만 앵무새처럼 인용 보도할 뿐, 보험료 내는 소비자 입장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헤아리고 지적하는 기사는 없다.

이대로 방치하면 소비자 보호는 없고 선량한 소비자들만 보험료 덤터기를 써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다.

보험은 당초부터 소비자를 위한 상호부조의 제도이지 보험사 돈벌이를 위한 수익 사업이 아니다. 행여 보험사들이 상호부조의 보험 정신을 털끝만치라도 알고 있다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생각을 바꿔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이다.”라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1779년~1855년)의 말을 보험사들은 곱씹어야 한다. 소비자를 홀대하는 보험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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