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에 부는 통일의 바람] 남북 교류와 평화 통일의 중요한 길목, 고성
[접경지에 부는 통일의 바람] 남북 교류와 평화 통일의 중요한 길목, 고성
  • 김민희 기자
  • 승인 2019.01.25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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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침체에 빠진 고성군
우려와 달리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통일전망대
한마음 한뜻으로 외치는 통일과 금강산 관광
지난해 12월 28일 문을 연 ‘고성 통일전망타워’. 사진=한종해 기자
강원도 고성군은 북한에 인접한 동해안 최북단 지역이다. 남북이 휴전선을 맞대고 절반씩 사이좋게 나눠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고성군은 2003년 시작된 금강산 육로관광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고성 통일전망대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해 북한을 지척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안보와 민족 평화를 상징하는 또 다른 랜드마크, DMZ박물관도 있다.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2007년까지 연평균 약 25만 명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경제적 호황을 톡톡히 누리던 것도 잠시,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북한 땅을 지척에…통일전망대

적막할 것 같았던 우려와 달리 출입신고소에는 통일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신고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북한과 지척인 통일전망대의 특성상 사전출입신고가 필요하다. 출입신고서에 개인신상과 차량정보를 기재하고, 승인을 받으면 주차요금과 관람료를 내고 관람권 구매가 가능하다.

통일전망대까지 마지막 길목인 제진검문소에서 간단한 검문을 거쳐 주의사항이 적힌 차량출입증을 발급받았다. 통일전망대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가 들어서 있었다. 화요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땅과 금강산 구선봉 관람을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전망대 관계자에 따르면 평일에는 300명 이상, 주말에는 1500명 이상이 방문한다.

통일전망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모습이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지난해 12월 새로 개관한 통일전망타워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기존 타워보다 20m가 높아 북한 땅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1984년 문을 연 통일전망대는 현재까지 3000만명 가량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꼭대기에 내리니 북한과 남한의 바다가 양옆으로 펼쳐져 있었다.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이곳에 서면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이 잡힐 듯 가깝다. 저 멀리 떠 있는 섬들과 암초들은 마치 데칼코마니 같았다. 맑은 하늘 아래 이북 땅이 손에 닿을 듯했다.

통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보여주듯,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전망대 관계자는 외국인 배낭여행객은 물론 러시아 등에서 온 단체 학생들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성군 통일전망대 야외데크에서 바라본 북녘 모습. 사진=한종해 기자

전망대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차례 빠져나간 빈자리를 다가온 누군가 메웠다. 강원도 원주에서 방문한 A씨는 “가까운 곳에 살지만 통일전망타워는 처음 방문해본다. 이렇게 지척인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와볼 걸 그랬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완전한 통일은 쉽지 않겠지만 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망 타워 아래에는 2004년 개통된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와 동해북부선 철도길이 보였다. 발아래 휴전선 철책을 내려다보면 전쟁의 아픔과 남북분단의 현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북한 땅을 한참 바라보던 B씨는 “두 번 다시 전쟁은 나지 말아야 할 텐데……. 죽기 전에 경의선 철도를 타고 금강산에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외데크로 나가니 단체관람객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날씨 덕에 뻥 뚫린 시야는 마치 통일까지의 여정이 밝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DMZ박물관에서 만난 한반도 분단의 발자취 

통일전망대에서 내려온 취재진은 주차장 한편에 자리한 6·25전쟁기념관에 들렸다. 기념관은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참상을 전하고 있었다. 전사자 유해발굴실에서는 전쟁터에서 산화하신 분들의 값진 희생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DMZ박물관에서는 남북분단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개관한 DMZ박물관은 7년 만에 누적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했을 만큼 고성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실내전시관은 7000여종의 전시물을 통해 남북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소개하고 있으며, 야외에서는 DMZ에서 실제 활용됐던 철책과 대북선전장비, 탈북민이 타고 온 선박 등 DMZ를 엿볼 수 있다.

DMZ박물관 2층에 자리한 상설전시관인 ‘평화의 나무가 자라는 DMZ.’ 사진=한종해 기자

그중에서도 취재진의 눈을 사로잡았던 공간은 2층 한편에 설치된 나무 형태의 조형물이었다.

“시베리아 열차 타고 가족여행 또 한 번 하고 싶다. 통일이여 빨리 오라” “남북의 통일로 전세계 1등 민족으로 우뚝서길” “진정한 평화와 공존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봅니다” “통일이 되어 북한 땅을 한번 밟았으면” 등 평화를 바라는 관람객들의 마음이 적힌 수많은 쪽지는 나무의 이파리가 돼 있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침체에 빠진 고성군

차량출입증과 신고서를 반납하고 최북단마을 명파리를 거쳐, 마찬가지로 최북단 콘도인 금강산콘도에 짐을 풀었다. 평일 저녁인 탓인지 콘도 앞 주차장은 한산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차량이 4대 정도 주차돼 있을 뿐이었다.

금강산콘도는 1997년 문을 열었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된 2003년부터는 객실점유율이 70%를 웃돌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콘도는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활기를 잃었다. 콘도관계자에 따르면 단체 관광객들이 간혹 방문하기는 하나 이전만큼의 호황은 누리지 못한다. 매출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콘도 내부로 들어서자 20년 세월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낡은 시설은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였으나 여유자금은 넉넉지 않아 보였다. 한산한 로비에는 이따금 콘도 내부의 사우나를 이용하는 방문객이 눈에 띌 뿐이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콘도 분위기를 한층 더 쓸쓸하게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콘도 근처의 대진항도 다를 바 없었다. 콘도에서 차로 5분, 도보로 15분가량 걷다 보면 대진항을 발견할 수 있다. 네온사인을 번쩍이며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는 보통의 관광지와 달리 대진항으로 향하는 길목은 한적했다. 음식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으나 문을 연 곳은 드물었다.

대진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C씨는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던 때에는 새벽부터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식당이 바글바글했었다.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인근 상인들도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기대감이 높다. 통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만 돼도 장사할 맛 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관광객 발길이 끊긴 고성군은 10년의 긴 시간 동안 침체에 빠져있다. 고성군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2012년까지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약 3600억 원이다. 그사이 폐업한 업소는 414개에 달한다.

고성군 관계자는 “지역 주민 대부분이 농사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하루빨리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음식점·숙박시설 등이 활성화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길 바란다”며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화진포를 거점으로 고성군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벨트를 조성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불어온 남북관계의 훈풍으로 금강산 육로관광 재개가 코앞으로 다가온 듯하다. 누구보다 관광 재개를 원하는 것은 고성지역 주민들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만으로 지역 활성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통일전망대가 있는 파주시는 통일경제특구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어렵사리 물꼬를 터놓은 남북관계에 힘입어 고성군 역시 체류형 관광도시로서의 발전을 꾀할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명파마을은 오가는 관광객 하나 없는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을 상대로 하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민박은 모두 문을 닫았다. 사진=한종해 기자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명파마을은 오가는 관광객 하나 없는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을 상대로 하던 식당과 건어물 가게, 민박은 모두 문을 닫았다. 사진=한종해 기자

우리나라 최북단 명파마을, ‘밝은 파도’는 언제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지역경제 직격탄
피격사건 이후 10년, 사방이 폐허
4차선 도로까지 뚫리며 마을 공동화
대책 마련 시급 “목소리 들어달라”


서울에서 약 250km. 꼬박 3시간반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 마을, ‘명파’다. ‘밝은 파도’라는 의미의 ‘명파(明波)마을’은 금강산관광의 출발지로 호황을 누렸다.

고성군청의 ‘금강산관광 중단에 따른 고성지역 피해 현황자료’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객은 2003년부터 2008년 7월까지 138만5872명이었다. 당시 마을에는 관광버스가 끝도 없이 늘어섰고, 민박집은 미어터졌다. 건어물 가게의 매출은 하루 1000만원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명파마을의 밝은 빛은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사그라졌다. 10년이 지나버린 지금 마을은 한산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 늘어선 건어물 가게와 부동산, 민박, 식당 등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마을 중앙 작은 슈퍼 한 곳 만이 불을 켜 놓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질문에 “되긴 되야 하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이유를 묻자 “경로당으로 가보라”며 손사레를 쳤다.

경로당에는 20여 명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말린 살구씨가 동전을 대신하고 있었다.

명파마을에서 막국수·감자전을 판매하며 가게를 운영했다던 할머니는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이 동네는 이제 장사가 안돼. 전에는 우리 동네를 통과해서 금강산을 갔는데 신도로가 생긴 뒤부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어. 금강산 관광 재개? 돼야지. 돼야하는데.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거야”라고 했다.

명파마을을 지나는 길의 명칭은 ‘금강산로’다. 하지만 금강산로는 더 이상 금강산으로 통하는 유일한 육로가 아니게 됐다. 부산에서 출발해 국도 7호선을 따라 고성까지 연결되는 아시안 하이웨이 AH6 노선이 2015년 9월 명파리까지 연결됐기 때문이다. 물론 왕복 4차로의 AH6는 그동안 2차로의 비좁은 도로를 이용해야 했던 통일전망대관광객들의 교통불편을 덜었다. 고성을 거쳐 북한 원산~두만강~러시아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21세기판 실크로드’ 중 하나의 연결이 시작됐다는 의미도 있다. 아시안 하이웨이는 아시아 32개국을 8개 간선과 58개 지선 등 모두 66개 노선에 길이만도 14만km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1호선(AH1)과 6호선(AH6) 등 2개 노선이 통과한다.

문 닫은 건어물 가게 앞에는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문 닫은 건어물 가게 앞에는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명파마을에는 불행이 됐다.

실제로 마을 너머로 보이는 직선도로는 통일전망대를 오가는 차들이 심심찮게 지났지만 정작 금강산으로 향한다는 마을 길에는 차량은 물론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취재진이 머물렀던 2시간여 동안 금강산로를 지난 차량은 마을 주민의 트럭, 단 2대였다. 접경지역의 특성상 군용차들이 많았지만, 그들마저 신도로만 이용했다. 신도로가 뚫리면서 명파마을 끝에 위치하던 검문소가 신도로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금강산로의 끝은 폐쇄된 검문소가 가로막고 있어 지날 수조차 없다. 주민들의 얼굴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40년 동안 건어물 가게를 운영했다는 할머니는 “TV에서는 기대된다 뭐다 매일 떠드는데 정작 여긴 조용해. 금강산 관광 재개? 되면 좋겠지. 그런데 뭐라도 있어야 장사를 다시 시작하지. 여긴 이제 다 늙어빠진 노인네들 밖에 없어. 젊은 사람들은 진즉 떠났어”라고 했다.

고성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명파리 인구는 2007년 362명에서 2017년 313명으로 50명가까이 줄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여파에 비해 변동이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고령인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7년 0명이던 65세 이상 고령자는 2017년 108명으로 늘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마을 주민은 200여명. 신규로 유입된 인구가 거의 없었다는 마을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령자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덧 화투판을 구석으로 치우고 취재진을 향해 다가온 한 할머니는 “차라리 관광이 중단된 첫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이 한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관광 위주의 개발보다는 4차선도로로 단절돼 버린 명파마을에 관광객들이 들를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달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명파마을 주민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변하던 남북정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들의 삶을 지탱해왔던 금강산관광마저 중단되면서 입에 풀칠조차 어려운 지경이 됐다. 남북화해무드가 절정에 달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명파마을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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