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치료제 및 진단기구 부족, ‘유명무실’한 병원
민간요법·장마당 싸구려 약 의존…사망원인도 불명

사진=연합뉴스

본격적인 겨울 추위로 북한 내 독감(인플루엔자)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에서는 매년 수많은 주민이 독감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들 대부분이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도 한다. 독감 치료제와 이를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전역 독감 의심 환자는 30만명, 확진 환자는 15만명 이상이다. 노인이나 어린 영유아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쳐 뇌막염, 급성폐렴 등으로 숨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북한은 수술비와 치료비, 약값 등을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독감에 걸려도 병원을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을 겪으면서 병원에 공급되는 의약품이 대폭 감소했다. 기초 약품을 비롯한 의료기구를 공급받지 못하는 병원은 장마당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에 주민들은 주로 장마당에서 의약품을 구입한다. 장마당에는 북한약을 비롯해 중국약, 유엔에서 공급받은 약 등이 거래된다. 가짜 약품 유통 등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주민들에게는 감기약을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약 중 북한약은 가장 값이 저렴하다. 하지만 그만큼 효과도 없어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다. 북한 제약회사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여온 약을 희석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널리 쓰이는 약은 중국 링거 ‘알부민’과 항생제 ‘암피실린’이다. RFA(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감기 치료방법으로 중국산 링거와 항생제를 섞어 정맥주사를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부민은 한 병당 1만2000원, 암피실린 한 대는 2500원으로 북한약 대비 약 2배가량 비싸지만 상대적으로 효과가 좋아 주민들이 주로 사용한다.

간혹 북한 항생제를 구입해 의사를 찾는 주민들도 있으나 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북소식통은 “의사들이 북한 약은 중국산을 재가공해 만든 것으로 아무런 약효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전했다.

효과가 뛰어난 약품들은 모두 개인 약국에서 취급한다. 개인 약국에는 한국산 가정상비약을 비롯한 수입 약품을 판매된다. 그중에는 해외 구호단체에서 지원받은 감기약 등도 다수 포함돼 있으나 높은 가격으로 일반 주민들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소수 부유층과 간부급들만이 해당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난한 주민들은 독감에 시달리면서도 치료는커녕 약조차 구경할 수 없는 셈이다.

북한의사 출신인 최희란 신혜성의원 원장은 “심한 감기로 사망하는 북한 주민들이 많지만 독감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마땅한 의료기구가 없다”며 “독감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인지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약품 공급소로부터 받는 독감 치료제도 당연히 없었다. 약을 구할 수 없는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약이나 민간요법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으나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남북 교류 협력 차원에서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20만명분과 독감 신속 진단키트 5만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이처럼 타미플루를 지원하는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북한 독감 발병률이 높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지원량을 결정하게 됐다”며 “분배 과정까지 확인을 거쳐 북한 주민에게 직접 치료제가 전달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확인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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