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와 재판거래, 직간접적으로 보고 받고 지시 의혹
양승태 “법관들의 잘못 밝혀지면 책임질 것”…법관 아닌 본인 잘못 지적
검찰 대신 대법원 앞 기자회견…정치인은 국회, 기업인은 회사 앞에 포토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거래 의혹 등으로 ‘사법농단’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한 가운데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검찰 출석에 앞서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양 전 대법원장은 “제 재임기간 중에 일어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일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법관들을 믿어 달라고 호소한 양 전 대법원장은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언제나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봉직하고 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이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법관들의 잘못이 밝혀진다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혐의는 다른 법관들의 잘못이 아니라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의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재판거래 등으로 ‘사법농단’의 정점에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1년부터 6년간 대법원장을 지낸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비롯해 전교조 법외노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와 동향 수집, 통합진보당 재판 등과 관련한 재판거래 문건을 보고받거나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법관을 사찰하고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징계 시도,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는 등 자신을 비판하는 대내외 세력을 탄압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사법부 블랙리스트,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허위공문서작성 등 40여 가지에 이르는 범죄 혐의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을 비롯해 전직 대법관들인 차한성(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 박병대(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무실), 고영한(서울 종로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들 대법관들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재판 진행을 논의했다는 소위 ‘삼청동 비밀회동’에 참석한 인물들이고 이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거나 보고를 받은 장본인으로 양 전 대법관이 지목됐다.

이에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해 수사 착수(2018년 6월 18일) 207일 만인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세한 사실관계는 조사 과정에서 기억나는 대로 가감 없이 답변하고 오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면서 “편견이나 선입감이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조명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상황이 사법부 발전과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한 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동해 검찰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들도 피하지 못한 검찰 포토라인 대신 대법원에서 입장을 발표하자 앞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는 국회 앞이나 정부청사 앞, 기업인들은 회사 앞에 포토라인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강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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