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韓國經濟, 규제개혁이 혁신성장의 답이다
경제정책 중점 ‘투자 통한 경기활성화’에 둔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의장인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 등 올 한해 경제정책 성과와 과제 등을 평가하는 동시에 포용성장 등 내년도 경제기조를 놓고 자문위원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시스템이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로 한국 경제의 하방리스크와 비관론이 확산하자 위기의 한국호(號)가 항로를 바꾸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 중점을 소득분배가 아닌 ‘투자를 통한 경기활성화’에 둘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 17일 경제 관련 모든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경제참모들이 참석한 확대경제장관 회의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해 규제혁신과 투자활성화를 통해 경제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신생 독립 국가로는 유일하게 세계 일곱 번째로 인구 5000만명과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3050클럽에도 가입했다. 국가경쟁력도 높아졌다. 대한민국은 세계경쟁력포럼(WEF)가 지난 10월 17일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15위에 올랐다. 2017년 26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11단계 높아졌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에서는 12번째를 차지했다.

◆경쟁구조 취약하고 노동시장은 경직

하지만 세부 항목에 따라 큰 편차를 보였다. 혁신적 사고는 90위에 불과했고 기업가 정신과 기업문화는 50위에 만족해야 했다. 세계경제포럼은 생산물 시장의 취약한 경쟁구조와 노동시장의 경직성, 이중구조를 약점으로 지적했다.

67위를 차지한 생산물시장 평가에서는 독과점의 수준과 관세의 복잡성이 요인으로 지적됐다. 노동시장은 48위에 머물렀다. 특히 노사협력은 124위, 정리해고 비용은 114위로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UN의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75점으로 157개국 중 57위였다. 2013년 최고 41위에 도달한 뒤로 16단계나 내려 앉았다. OECD 35개국 중에서는 32위를 기록했다.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격차를 나타내는 ‘행복불평등도’는 이보다 훨씬 낮은 96위였다.

지난 12월 24일 통계청이 발간한 ‘KOSTA 통계플러스’ 겨울호에 게재된 ‘노인 인구집단별 삶의 만족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1위로 집계됐고, 50세 이상 인구의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8년 전체 인구의 14.3%이고, 2025년에는 2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OECD 국가 중 고령화 진행속도는 우리나라가 가장 빠르다.

서울 시내 한 대학 채용정보 게시판. 사진=연합뉴스

청년 실업률도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실업자 수는 지난 11월 기준 90만9000명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105만5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을 나타내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확장실업률)는 21.6%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사회적 양극화도 심각해 3분기 소득 1분위 가구, 즉 소득 하위 20%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31만8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0%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소득은 973만6000원으로 8.8% 증가했다. 5분위 가구 소득을 1분위 가구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5.52를 기록,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국내총생산은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그 결실은 골고루 돌아가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저성장과 양극화 등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일자리·소득주도·공정 경제’를 화두로 변화된 경제 패러다임을 추진했다.

◆공격적으로 펼친 소득주도성장, 결과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의 투자도 활발히 일어나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는 ‘분수효과’가 가능하다고 설명해 왔다. 또 ‘공정 경제’라는 경제 체질로 성장의 결실이 경제 전반으로 골고루 확산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재벌 개혁과 관련해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개혁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소득주도성장을 구체화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2017년에 이어 최저임금 인상이 단행됐고, 주 52시간 근무 법률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파 최소를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과 근로장려세재(EITC) 확대를 병행했다. 지난해 초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올 하반기쯤 가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난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통계는 달랐다. 위에서 언급했듯 정부의 경제 정책을 판가름할 수 있는 지표는 하락을 지속했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인 지표도 있었지만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늘어만갔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야권의 비판에서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

경제부총리·정책실장 동시에 교체

이후 청와대의 기조가 변화하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론을 소득주도성장론에 녹여낸 홍장표 경제수석 등이 청와대 참모들 가운데 처음으로 교체됐으며, 황수경 통계청장도 특별한 이유 없이 교체됐다. 11월에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흔들림 없는 추진”을 강조하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동시에 교체됐다.

한 발 물러선 文, 조화와 공감 언급

이때부터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보완하고, 규제혁신과 기업투자 활성화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혁신적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해 규제혁신과 투자활성화를 통해 경제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에서 투자를 통한 성장에 무게를 둔 정책 변화를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은 구조개혁 성과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력산업 경쟁력·생산성 제고’ 방안과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 등이 핵심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규제혁신과 관련한 구체적 사례로는 ▲도시지역 내 숙박공유 확대 ▲제한적 원격의료 허용 ▲비의료기관의 건강관리 서비스 기준 마련 ▲일부 지역 제한없는 카셰어링 서비스 도입 ▲지자체 유휴 공간 개방 ▲군사보호구역 대폭 해제 ▲기업 투자애로 신속해결 등 7가지다.

정부는 도시지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만 허용된 숙박공유를 연 180일 이내에는 내국인에게도 허용하기로 했다. 세종·부산 등 스마트시티 시범 지구에서는 자동차 대여·반납구역 제한이 없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범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카카오페이·페이코와 같은 비금융기관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비의료기관에도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키로 하고 사례집을 오는 1분기 중 발행한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에 대한 비대면 모니터링 사업을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올해 시범적으로 추진한다.

더불어 낙후 접경지역 군사보호구역을 대폭 해제해 투자기반 조성에 나선다. 정부는 경기 1억1000만㎡, 강원 2억1000만㎡ 등 여의도 면적의 116배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호구역에서 해제할 계획이다.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의 일몰기간은 2024년 8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원샷법인 공급과잉 업종 기업이 신속하게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 등에 대한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법으로, 박근혜 정부 때 통과됐다. 문재인 정부는 더 나아가 원샷법 지원대상을 기존 ‘공급과잉 업종’에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반적으로 환영, 아쉬움도 남아

정부의 ‘2019 경제정책방향’이 나온 이후 재계는 대체로 환영했다. 특히 규제를 풀어 투자 활성화를 지원키로 했다는 점을 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규제 개혁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재계 관계자는 “군사보호구역 일부 해제 등은 이미 발표됐던 사안인데다, 숙박공유를 제외하면 신선한 규제개혁이 없다”며 “특히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 대비 신사업에 대한 규제혁신은 미흡하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카풀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는 점도 아쉬움을 더한다. 정부는 갈등이 첨예한 만큼 상생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019년 성장률을 2018년과 유사한 2.6~2.7%, 신규취업자 증가는 2018년보다 5만명 늘어난 15만명 수준으로 목표를 삼고, 정부부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019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세부 내용을 발표하면서 “가계와 기업, 국회와 언론, 노동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사회적 대화와 소통, 타협과 양보를 통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열고,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데 모두가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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