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6년 27개 하도급 업체에 1817건 계약서 발급하지 않아
서면 발급한 것처럼 꾸며 날짜·기간 허위 기재…업체들, 대금 모르고 작업
정당한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 일방 지급, 연대보증 강요하기도

공정위가 26일 대우조선해양에 '하도급 갑질'로 과징금 108억 원을 부과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대금을 일방적으로 낮게 지급한 대우조선해양(주)에 과징금 108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26일 “사내 하도급 업체들에게 해양플랜트 및 선박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 대금을 일방적으로 낮게 결정해 지급한 대우조선에 시정명령과 함께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27개 하도급 업체에 거래 조건을 기재한 계약 서면 총 1817건을 하도급 업체가 작업을 착수하기 전까지 발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적발된 불공정 하도급 행위는 해양플랜트나 선박의 배관, 전기 장치, 선체 가공 등의 작업을 주로 수행한 27개 사내 하도급 업체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같은 행위는 하도급 업체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도급 계약의 내용을 기재한 서면을 발급하도록 규정한 하도급법 제3조 제1항에 위반된다. 특히 대우조선은 작업을 시작한 후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수정·추가 공사에 대해 ‘선 작업·후 계약’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에 하도급 업체는 작업 수량이나 대금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정·추가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작업이 끝난 후에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정산합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이 사전에 서면을 발급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이미 끝난 작업에 대한 견적의뢰서와 계약서를 사후에 형식적으로 만들면서 계약 날짜와 기간을 허위로 기재한 사례들도 다수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전 계약 서면은 공정한 하도급 거래의 전제 조건임을 감안할 때 대우조선이 의도적으로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행위는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행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공정위는 “대우조선은 수정·추가 작업에 대해 실질적인 합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예산 사정에 따라 기성 시수(작업 물량을 노동시간 단위로 변환한 것)를 적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낮은 하도급 대금을 지급해온 것”이라며 “시수 계약으로 대금을 지급하면서 수정·추가 공사는 객관적인 시수 산출을 위해 요구되는 공종별 표준원단위(품셈표)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시수 계약을 위해서는 작업 종류별로 물량을 시수로 전환하는 기본 산식인 표준원단위가 꼭 필요하다. 표준원단위가 없으면 기성 시수가 실제 작업 물량과 괴리돼 임의로 결정될 수 있다.

대우조선은 객관적 근거 없이 실제 작업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예산 사정에 따라 마음대로 기성금을 지급했다. 이로 인해 하도급 업체는 작업의 대가로 받는 기성금이 어떤 근거에 의해 산출된 것인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공정위는 “대우조선은 이 심각성을 잘 알면서도 실제 작업량과 무관하게 기성이 정해진다는 사실이 하도급 업체들에게 알려지면 소송 등 법적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숨기기에 급급했다”며 “대우조선이 지급한 수정·추가공사 하도급 대금은 합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조선사 하도급 문제 해결 위한 을지로위원회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김상조 공정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또한 대우조선은 공사 대금을 매월 일괄 정산하면서 내부 문서에 반복해서 기록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결국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하도급 업체는 계약서 없이 임의로 작성된 정산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들은 대우조선에 100% 의존하면서 매월 기성을 받아야만 직원 임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대우조선은 하도급 업체들의 열악한 지위를 철저하게 악용한 것”이라며 “대우조선이 일방적으로 지급한 하도급 대금은 정당한 대가나 일반적으로 지불되는 대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수정·추가 작업에 대한 보상이 미흡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예산 부족’ 때문이라는 자체 진단에 그쳤다. 조사 대상 기간(2013~2016년) 동안 국내 조선 업계 전체가 침체됐고 해양플랜트 수주가 급격하게 감소돼 생산 예산을 지속적으로 감축했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해양플랜트의 경우 일반 상선과 달리 표준화하기가 어렵고 건조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수정·추가 공사가 빈번하게 대규모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조사와 관련된 하도급 업체 대부분이 해양플랜트 제조와 관련이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들이 공사에 실제 투입한 작업 시간 중에서 기성 시수로 인정된 비율은 평균적으로 20%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며 “보통 작업 시간의 70% 이상 기성 시수로 인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정·추가 공사 하도급 대금이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도 현저하게 낮았다”고 평가했다.

이는 하도급법 제4조 제2항 제5호의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해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로 같은 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에 해당된다.

부당 특약에 대해 공정위는 “대우조선은 2015년부터 총 계약 금액의 3% 이내에서 수정·추가 작업이 발생하더라도 차액을 정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 조건을 설정했다”며 “이는 본 공사의 3% 이내에서 수정·추가 작업을 하도급 업체에 무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하도급 업체가 법인인 경우 대우조선은 계약 이행 보증 및 하자 보수 보증 명목으로 공탁금을 요구하는 것과 별도로 하도급 업체의 대표(개인)에게 연대 보증을 요구하는 계약 조건을 설정했다. 이것 역시 하도급 업체가 통상의 거래 관행에 따른 보증금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추가로 하도급 업체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므로 부당한 행위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는 하도급 업체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부당한 특약 설정을 금지한 하도급법 제3조의4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강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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