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군사정권, 불공정 막는 공정거래법 악용 ‘경제권력’ 탄생시켜
정부 규제 독점 ‘전속고발권’ 등 폐지 수순, 38년 만에 전부개정안 의결
1999년 ‘국민의 정부’ 기업구조개혁 위해 개정, 국민에게 공정거래 돌려줘야

지난 11월 9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는 기업의 자유 경쟁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경제 질서를 가리킨다. 공정거래를 위해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지위 남용 방지로는 부당한 가격 결정이나 출고 조절 등의 경쟁 제한 행위와 가격의 동조적 인상을 금지하고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회사합병 등 기업의 결합을 제한하고 부당 차별 행위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부당 공동 행위와 불공정거래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국제계약의 체결도 제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 12월 31일 제정, 1981년 4월 1일 시행됐다. 부당한 공동 행위 및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시켜 창의적인 기업 활동, 소비자 보호를 비롯해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 제정·시행의 목적이었다.

시행 한 달 뒤인 5월에는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중요한 사항과 이 법에 위반되는 사항에 대한 결정·처분을 하기에 앞서 이를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처음 발족됐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1960년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산업 조직의 독과점화와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 기업에 재정·금융 지원을 한 결과 시장을 지배하는 소수 기업의 등장으로 필요성 제기와 함께 시작됐다.

정부는 1973년부터 시행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과 1975년 2월의 ‘공정거래법 입법요강’을 절충한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입안했고 1975년 12월 말 확정·공포했다. 이 법에서는 최고 가격의 지정, 공공요금 등의 결정 또는 독과점 가격의 신고 및 지정 등을 규정했고 사업자의 불공정거래 행위와 사업자 간의 부당한 경쟁 제한 행위를 금지했다. 이후 경제 운용의 기본 방향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해 시장경제원리에 의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도모했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내용 중 공정거래 정책에 관한 규정이 삭제됐고 1980년 12월 공정거래법이 확정됐다.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공정거래가 제도화된 것이다.

이어 1999년 8월 15일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기업구조개혁을 위한 3대 과제의 하나로 ‘계열사 간 순환출자 축소 및 부당내부거래 방지’를 제시했다. 8월 25일 대통령 주재 재계와 정부 및 금융기관 간담회에서는 실천 방안이 합의됨에 따라 법 개정안이 마련돼 12월 공정거래법이 일부개정됐고 2000년 4월 시행됐다.

개정안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도입됐다. 1998년 2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후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가 증가됐고 내부지분율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동일인이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또 계열사 간 출자로 연결고리가 형성돼 일부 계열사의 부실이 전체 기업집단의 동반 부실화를 초래하는 등 선단식 경영의 폐해 발생을 막기 위한 도입이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무분별한 계열 확장을 억제하며 핵심 역량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등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필요했다.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금융 또는 보험회사는 제외)가 소유하고 있는 국내 다른 회사 주식의 합계액(출자총액)이 당해 회사 순자산의 25%(출자한도액)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4차에 걸친 조사 결과 부당 지원 행위가 다양화되고 은밀하게 행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성으로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도 부과됐다. 이와 관련해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이사들의 책임을 강화(내부 통제 장치)하고 소액주주나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에 의한 감시를 유도(외부 통제장치)하기 위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게 됐다.

개정 내용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소속 모든 회사(상장·비상장회사 불문)의 일정 규모 이상 대규모 내부거래를 이사회 의결 대상으로 하고 이를 공시토록 하며 공시 업무는 공정위가 증권거래법 제186조(상장법인의 신고·공시업무 등)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고수리 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시 방법 등은 공정위가 공시위탁 기관과 협의해 정하도록 했고 이사회 의결 및 공시를 하지 않거나 허위공시를 한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게 했다.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한도는 최고 한도(매출액의 2%)가 낮아 부당지원 내용 및 정도에 상응하는 과징금 부과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과징금 부과의 형평성과 실효성 제고를 위해 매출액의 2% 범위 안에서 부과하던 과징금을 5% 범위 안에서 부과할 수 있도록 상향 조정됐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 제정 이후 67번의 개정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모두 일부개정 또는 타법개정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월 27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제출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법 제정·시행 후 38년 만의 전면 개편이었다.

제안 이유에 대해 정부는 공정거래법의 제정 당시에 비해 최근의 경제 환경과 시장 상황은 크게 변화됐다고 밝혔다.

또한 공정경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과징금 부과 상한을 상향하고 경성담합(가격·입찰 담합, 공급 제한, 시장분할)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며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사, 행정, 형사적 규율수단을 종합적으로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을 합리적으로 보완·정비해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고 기업집단의 지배 구조가 선진화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피심인의 방어권 확대, 공정위 조사의 적법 절차 강화, 사건 처리의 투명성 제고 등 전반적인 법 체계와 구성을 재정비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함께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고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에 부합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의 전면적인 개선을 하기 위한 개정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학계·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운영된 ‘법 집행 체계 개선 특별팀(TF)’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다.

전부개정안은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 개선을 위해 경쟁법 집행에 경쟁원리를 도입했다. 특히 형사 제재 수단의 합리적 정비를 위해 사회적 비난이 큰 경성담합에 대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했고 형벌 부과 사례가 없어 법 체계상 맞지 않는 기업결합 및 일부 불공정거래 행위 등에서 형벌을 폐지했다.

또한 담합·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시 손해액 입증을 지원하기 위한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제를 도입했다. 다만 영업비밀의 보호를 위해 법원이 소송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을 명할 수 있도록 비밀유지명령제도를 신설했다.

행정 제재 수단의 실효성 제고와 법 위반 억지력 제고를 위해서는 위반 행위 유형별 과징금 부과 상한을 담합은 10%→20%, 시장지배력남용 3%→6%, 불공정거래 행위 2%→4% 등 2배로 상향 조정했다.

기업집단 규율법제도 예측·지속 가능한 규율 체계 구축으로 개선됐다. 편법적 지배력 확대 차단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집단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 제한 규제를 신설했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 한도 내에서 허용하기로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에 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의무도 부과했다.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위해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현행 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20%를 20%로 일원화했고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기업집단 지정 기준 개선을 위해서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지정 기준이 경제 규모의 성장에 연동돼 자동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현행 10조 원에서 국내총생산액의 0.5%로 변경했다.

또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M&A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 설립 요건 및 행위 제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독과점 산업에 대한 시장분석 근거를 명확히 하고 소관 부처의 검토·회신 절차를 마련했다.

법 집행 절차의 투명성 강화 조항은 공정위 조사단계에서 피조사인, 이해관계인, 참고인에 대해 의견제출권 및 진술권 부여, 공정위 조사·심의를 받는 사업자나 사업자단체 등에 대한 변호인 조력권 명문화,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위반 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이원화돼 있는 현행 처분 시효를 7년으로 일원화했다. 다만 사건 처리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담합의 경우 현행 처분 시효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공정위 심의단계에서 공무원이 현장조사를 하거나 당사자로부터 진술을 청취하는 것을 금지했다.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이낙연 총리.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입법예고·공청회 과정에서 제출된 의견, 관계 부처 의견 등이 반영돼 일부 수정·변경됐다.

현행 비상임위원제도 유지, 정보 교환 행위 규제 제외, 피인수기업의 국내시장 활동 요건 구체화, 진술조서 작성 거부권 근거 규정과 변호인의 조력권 배제 근거 규정 삭제, 피심인의 열람·복사 요구 대상이 되는 자료를 ‘처분과 관련된 자료’로 규정한 현행 문구 유지 등이다.

전속고발제 폐지 적용 시점은 개정법 시행 이전에 이뤄진 경성담합에 적용되도록 부칙에 명시했고 신고포상금 지급 및 환수에 관한 규정은 삭제했다.

전부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거쳐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38년 만의 전부개정은 후진적인 집행 절차를 일정 부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제5공화국을 탄생시킨 전두환의 신군부가 만든 정부 규제 독점을 해제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불공정거래는 군사독재 시절에 정권과 함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은 불공정거래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공정거래법으로 기업을 독점으로 규제하면서 또 다른 불공정을 저지르고 경제권력을 탄생시켰다.

이번 전부개정은 군사독재와 경제권력이 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악용한 법을 공정거래를 원하는 국민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인 셈이다. 아직 불완전하지만 그렇게 보고 싶은 시선이 적지 않다.

파이낸셜투데이 강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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