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손해사정 관행 개선
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직접 선임권 강화
보험사의 손해사정 위탁 공정성 문제 개선…제재도 함께 마련

사진=연합뉴스

내년 상반기부터 보험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선임권이 강화된다. 보험회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선임에 동의해야 하고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또 합리적인 손해사정 업무 위탁 기준이 신설된다.

손해사정이란 발생한 손해가 보험 목적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고 손해액을 평가·결정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말하고 그 업무를 맡은 자를 손해사정사라고 한다.

금융당국은 보험권의 손해사정 관행에 대한 개선안을 최근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1월부터 생명·손해보험협회, 손해사정사회, 보험연구원, 보험업계 등 관계기관과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손해사정 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해왔다.

손해사정 제도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손해사실 확인과 손해액 산정을 통해 적정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고 보험회사가 전문 손해사정사를 직접 고용하거나 외부 손해사정업체에 위탁해 손해사정을 하도록 법(보험업법 제185조)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최근 보험회사의 손해사정 관행이 보험금 지급거절·삭감 등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언론과 국회 등으로부터 제기돼왔다.

보험회사와 손해사정업체와의 종속관계로 인해 손해사정업체가 보험회사를 위해 소비자의 보험금을 깎거나 청구 철회를 유도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험권역 민원 중 손해사정과 직접 연관된 민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6년에는 1만6898건으로 전체 민원건수의 34.8%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1만7033건으로 35.7%를 차지했다.

또 손해사정사와 손해사정업체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한정된 수요로 손해사정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는 모습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손해사정등록업체수는 2016년 1056개에서 2017년 1155개, 2018년 8월 말 까지 1223개로 늘었다. 반면 생명·손해보험회사의 각 대형 4개사의 위탁건수는 2016년 443만건, 2017년 439만건, 2018년 8월 말에 297만건으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다.

하주식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충분한 손해사정인력 확보나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나 불법행위 등으로 소비자 피해를 야기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손해사정업무 위탁 기준을 내년 상반기에 신설할 계획이다. 대형 보험회사의 경우 손해사정 전문 자회사를 직접 설립해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하는 등 손해사정업체가 보험회사의 이해관계를 우선 고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위탁업체 선정 시 전문인력 보유 현황, 개인정보보호 인프라 구축 현황, 민원처리 현황 등 손해사정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 중심으로 위탁업체를 평가하고 선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하 과장은 “위탁 수수료 지급 시 보험금 삭감 실적을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등 손해사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은 일체 반영을 금지하도록 감독규정에 반영하겠다”면서 “이 규정은 자회사 위탁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는 선임권도 활성화된다.

보험업법 등에 따르면 보험계약자는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고 보험사의 동의를 얻으면 비용도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보험사가 소비자의 선임의사에 대한 명확한 검토 기준이 없어 선임권을 보장받기가 어려웠다.

이에 금융위는 소비자가 손해사정 선임 의사를 밝힐 경우 보험사가 동의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인 동의 기준을 내부통제 기준으로 마련토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손해사정사 선임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동의 기준을 보험회사 홈페이지 등에 공개토록 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시범적으로 국민의 대다수가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에 한해 동의 기준을 확대하는 안을 운영한다. 보험회사는 소비자가 실손의료보험으로 보험금 청구 시 공정한 업무 수행 등에 지장이 없는 경우 손해사정사 선임권에 원칙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다만 소비자가 선임한 손해사정사가 적합한 자격을 보유하지 않는 등 전문적인 업무 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되거나 합당한 수수료 지급 체계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계약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거절이 가능하다.

하 과장은 “향후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소비자 선임권이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면 다른 보험상품도 동의요건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내년 1월부터 소비자가 공정한 손해사정업체를 직접 비교·조회해 선임할 수 있도록 손해사정업체의 주요 경영정보에 대한 공시도 실시한다.

손해사정사회에 소속된 주요 손해사정업체의 경우 전문인력 보유 현황, 경영실적, 징계 현황 등의 정보를 통합해 시범 제공되고 그 외의 손해사정업체 등도 손해사정사회나 생명·손해보험협회 등을 통해 유사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금융위는 유도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보험회사의 손해사정 위탁 공정성을 높여 보험회사·손해사정사 간 수평적 관계에서 전문적인 손해사정이 수행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소비자의 손해사정 관련 권익도 제고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세심한 관련 제도 개선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선임권 강화 등 정부의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일부 손해사정사들이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받아야 할 보험금을 터무니없이 높게 산정해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더 많이 받아주겠다는 손해사정사를 선택할 것”이라면서 손해사정을 잘못했을 때 뒤따르는 제재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내년 2분기 중 소비자 선임권 강화 방안 등이 시행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개정과 자율규제 방안 마련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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