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자아실현 등 소재의 긍정적 변화
남북정상회담 이후 ‘임진년의 심마니들’ 주목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지난 7월 방영한 주말 연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 사진=연합뉴스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했던 북한의 TV드라마가 최근 개인의 꿈과 희망 등으로 소재를 다양화하며 북한 주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한 기술중시 및 주민 생활 향상 등의 경제정책이 드라마 소재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통상 북한에서는 드라마·영화를 체제와 정권유지,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사상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주로 전쟁영웅을 통해 국가에 충성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다.

북한의 드라마는 한국과 달리 3~4부작 정도의 짧은 드라마 제작이 주를 이룬다. 김정수 통일교육원 교수는 “북한 드라마는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 호흡이 긴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사회변화를 반영해야 하므로 짧은 호흡으로 제작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역시 집권 이후 비슷한 수단으로 드라마를 활용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서 체제강조의 정도가 약해진 추세다. 가족애·자아실현 등 개인 삶을 담은 가벼운 소재의 드라마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 시트콤인 ‘우리 이웃들(2013)’은 가족, 지역사회 등 단체 중시를 통해 집단주의와 협력의 장점을 강조한다. 해당 작품은 슬랩스틱 코미디 형식의 밝은 분위기로 제작돼 과거 전쟁을 주제로 다룬 무거운 드라마와 대비된다.

드라마를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6년 방영된 드라마 ‘Value Others’에서 군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과거 드라마와 달리 군복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세련된 의복을 입고 생활한다. 평양의 고급아파트와 화려한 위락시설 등을 통해 상업화된 생활상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존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개인의 ‘꿈과 소망’을 소재로 한 ‘소학교의 작은 운동장(2014)’과 ‘소년탐구자들(2013)’ 등도 방영된 바 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남북 화해 분위기를 반영한 듯 최근 드라마에서는 달라진 점도 있다.

지난 7월 방영된 8부작 드라마 ‘임진년의 심마니들’은 16세기 말 심마니들을 주인공으로 일본의 개성 인삼 약탈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통해 애국주의 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의 드라마다.

역대 북한 지도자들이 등장할 수 없는 조선시대 임진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해당 작품은 체제 우상화 메시지를 담지 않은 북한 내 유일한 드라마로 꼽힌다.

또한 드라마에 잘 등장하지 않는 예고편이 방영된 점, 평양외국어대학·조선장수무역회사가 후원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상업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는 다른 나라와 드라마 형식이 유사하고 자막·더빙 등 후시작업을 거쳐 해외 판매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를 단정 짓기 이르다는 의견이다.

김정수 교수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드라마는 ‘임진년의 심마니들’ 한 편밖에 없어 추세를 분석할 충분한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주제가 분명히 드러났으나 최근 드라마 소재가 다양해지고 가벼워짐에 따라 우상화 주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 하다”며 “향후 김정은이 목표로 내세운 인민 생활 향상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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