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배수람 기자

서울 강북 일대 지역을 마비시킨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고는 IT 강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11시 발생한 화재는 10시간여만인 밤 9시가 넘어서야 완전히 진화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KT 아현지사 회선을 사용하는 일대 지역 주민들은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서울 서대문구를 비롯한 중구·마포구·용산구·은평구 및 경기도 고양시 일대까지 번진 이번 통신대란으로 직접 피해를 입은 시민은 13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피해액은 2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화제가 단순 광케이블이 지나는 D등급 시설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사업자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전국망에 미치는 영향 및 수준 등을 고려해 A부터 D까지 4단계로 등급을 구분한다.

아현지사는 혜화·구로 등 메인 국사나 목동 데이터센터와 같은 국가기반 주요 핵심시설 대비 중요도가 떨어지는 시설로 분류돼 있다. 현행법상 D등급 시설에는 백업체계 구축 의무가 없다. 등급에 따라 화재예방책을 차등 적용하고 사고로 빚어지는 통신장애를 대체할 백업 시설을 진작에 갖추지 않은 것이 이처럼 사태를 키운 셈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관계부처 및 관련 통신사업자와 함께 통신시설 전체를 종합 점검하고 화재방지 시설 확충 등 체계적인 재발 방지조치를 내달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통신 3사가 가진 전국 통신구에 대한 안전점검과 시나리오별 실태 파악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며 백업체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KT 역시 전국 네트워크 시설 특별점검 및 상시점검을 강화하고 비의무지역(500m 미만 통신구)에 대해서도 CCTV와 스프링클러 등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기정통부 및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과 로밍 협력, 이동 기지국 및 WiFi 상호 지원 등 향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응방안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통신장애는 수년째 반복됐고 관련 법안은 꾸준히 발의됐다.

올 4월에도 2시간 30분가량 이어진 SK텔레콤 통신장애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사고는 비단 K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통신망을 뒷받침할 촘촘한 백업체계가 필수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물인터넷·인공지능 등을 도입한 전자기기는 일개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현지사 화재로 또 한 번 통신장애를 되풀이하고서야 관련 논의가 진행돼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5G 상용화를 앞둔 가운데 재난에 가까운 통신장애는 아주 작은 오류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목도했다. KT 아현지사 화재사고를 반면교사로 ‘최초’ 경쟁보다 필요한 것은 철저한 안전관리 및 보안시스템 구축이라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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