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규모 늘렸지만 2곳만 발행어음 사업…반쪽짜리 초대형IB
정부부처 엇박자까지 걸림돌 “규제 완화 이뤄져야”

여의도 금융가.사진=연합뉴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겠다는 목적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초대형 IB(투자은행) 도입이 1년을 넘었지만 사업 속도는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초대형 IB는 2016년 8월 금융위원회가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육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금융위는 자본금 4조원 이상을 충족하면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서 인가를 통해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자기자본 수준별로 업무와 인센티브를 차등화해 증자, M&A 등을 통한 증권사들의 자기자본 확충을 유도한다는 의도였다. 이를 통해 혁신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중개업 역할에 머문 국내 IB 덩치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미래에셋대우·KB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 5개사는 자기자본 확충 절차에 돌입했다. 이들은 합병 및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 4조원을 넘겼고 지난해 7월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사업)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초대형 IB의 핵심사업으로 꼽히는 발행어음 인가는 순탄하지 않았다. 발행어음은 종합금융회사가 영업자금 조달을 위해 자체 신용으로 융통어음을 발행해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의 1년 미만 단기 금융상품이다.

지난해 11월 금융위는 5개 증권사에 대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지정하고 한국투자증권에만 단기금융업을 인가했다. 금융위는 금감원에서 심사가 완료된 증권사에 대해서만 승인을 냈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 27일 한국투자증권은 ‘퍼스트 발행어음’을 선보이며 사업을 시작했고 첫날 4141억원, 이튿날 5000억원 판매해 조기 마감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지난 5월 30일 NH투자증권이 두 번째로 단기금융업을 인가받았다. 7월 판매를 시작해 출시 한 달 만에 970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반면 단기금융업을 인가 받지 못한 미래에셋대우·KB증권·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인가는 여전히 불투명해 반쪽짜리 초대형 IB라는 평가다.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본시장을 육성하는 킬러콘텐츠로 초대형 IB 육성 방안을 시행하고 있고 발행어음과 모험자금을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며 “5곳 중 발행어음을 취급하는 곳은 2곳뿐이다. 금융위가 발행어음 사업 인가에 좀 더 탄력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이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인가받지 않은 증권사들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결격 사유가 있다”며 “회사가 빨리 흠결 요인을 해소해 심사를 받는 것이 답이다”고 답했다.

실제 미래에셋대우는 자기자본 규모 8조원을 넘겼지만 일감몰아주기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어 인가심사에서 보류판정을 받았다.

삼성증권은 지난 4월 발생한 ‘배당오류’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금융위는 지난 7월 삼성증권에 대해 업무 일부정지 6개월과 대표 직무정지 3개월 제재를 확정했다. 결국 삼성증권의 신규사업 인가 신청은 불가능해졌다.

KB증권은 이들 중 발행어음 사업 인가 가능성이 가장 높았지만 지난 7월 불거진 직원 횡령사건으로 당분간은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초대형 IB에 대해 규제 대상으로만 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금융투자업 인가 체계상 금융투자회사가 새로운 상품과 신규 업무를 확장하려면 매번 변경 인가가 필요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인가 과정에서 대주주나 본인의 사회적 신용 및 사업계획 요건 미충족으로 인가를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한다.

하지만 은행이나 보험은 최초 시장 진입 시 받은 인가만으로 관련 업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어 신속한 신규 업무 추진이 가능하다. 금융투자업에 대한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업도 하나의 산업인데 정부가 지나친 규제로만 옭아매고 있다”며 “정부의 규제가 강해질수록 발전은 미뤄지고 있다. 규제가 완화돼야 산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또 초대형 IB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기업 대상 외환업무를 두고 정부부처의 입장이 엇갈렸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위는 초대형 IB 지정 관련 보도자료를 낼 당시 단기금융업 인가가 없어도 초대형 IB로 지정돼면 기업에 대한 환전 업무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만 기업 대상 외환업무가 가능하다고 금융투자협회에 유권해석해 인가 받지 못한 증권사는 업무가 불가능해졌다.

김 의원은 “금융위는 구체적인 이유나 향후 대응 방안 등 해명자료나 참고자료 하나 없고 증권사들에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다”며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며 초대형 IB 제도를 도입하고 민간 증권사의 합병과 수천억원의 증자까지 도모한 국가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정부부처의 업무 방식으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 초대형 IB의 발을 묶은 규제가 완화될 움직임이 나왔다. 금융위는 지난 1일 ‘자본시장 혁신과제’를 통해 혁신기업 자금 공급에 증권회사가 IB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제 체계를 정비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혁신과제에는 증권회사에 적용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를 네거티브(Negative) 규제로 전환해 기업금융업무에 자율성을 제고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에 사업 가능한 항목을 열거하고 이외의 행위를 규제하는 방식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미리 정한 금지 행위 외 나머지를 자유롭게 허용한다.

또 시장에 진입한 증권회사의 업무 확장 시 심사를 최소화해 탄력적이고 신속한 영업구조 개편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에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권 회장은 “자본시장 혁신과제가 자본시장의 새로운 도약과 혁신기업의 성장은 물론 투자의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자본시장 혁신과제로 지지부진하던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이 속도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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