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설계사는 글자 그대로 고객에게 적합한 보험을 설계해 주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보험모집인’이라 불렀으나 2003년 5월 개정된 보험업법에서부터 보험설계사로 칭하고, ‘보험회사를 위하여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사람으로서 보험업법의 규정에 따라 등록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험사는 물론 보험설계사도 마땅히 ‘보험설계사’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보험사는 물론 보험설계사들 조차 ‘보험설계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국적 불명의 명칭, 과장된 명칭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설계사 대신 사용하는 명칭은 무려 12개나 된다.

생보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칭은 ‘FC(Financial Consultant)’, ‘FP(Financial Planner)’로, 고객의 재무를 상담하거나 설계하는 사람(재무설계사)이라고 한다.

손보사들은 대부분 RC(Risk Consultant, 위험관리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사고나 상해를 주로 보장하는 손보사 특성을 반영한 명칭이란 것이다.

그 밖에 PA, LC, FSR, MP 등 하나같이 영문 일색이고 보험사마다 제 각각이다. 이것도 모자라 보험설계사를 ‘금융전문가’, ‘종합금융전문가’라고 덧붙여 부르기도 하고, 이 명칭을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에 버젓이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명칭 어디에도 소비자들이 명확히 알 수 있는 보험설계사란 문구가 없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이 입맛대로 FP·FC·RC·금융전문가라고 사용하고 있으므로 소비자들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잘못된 것이므로 조속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보험사 말에 의하면 ‘보험설계사’라는 용어가 구식이고 부정적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듣기 좋고 세련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당하다. 보험설계사는 보험설계사일 뿐, 재무설계사가 아니고 금융전문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제멋대로 사용하는 명칭은 소비자를 우롱하고 기만하는 과장된 것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금감원, 금융위는 그 동안 뭐했는지 궁금하다.

보험사(보험설계사)들은 진실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고 냉철해야 한다. 얼굴은 그대로 인데, 흰색으로 분칠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보험설계사의 이름을 미사여구로 바꾼다고 보험설계사가 재무설계사,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 아니고 금융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보험설계사’라는 용어는 구식이 아니고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것도 아니다. 행여 구식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과연 누구였는지 부터 살펴볼 일이다. 잘못됐다면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순서이고 도리일 것이다.

현재 많은 보험설계사들이 생애재정설계와 보장분석을 통해서 고객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도록 완전 판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설계사들은 이를 생략한 채, 수수료 많은 상품에 매달려 가입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일부 법인보험 대리점(GA)에서는 브리핑 영업, 전화 후 우편판매 등 변종 판매가 벌어지고, 철새설계사들이 승환계약과 경유계약을 반복해서 가입자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함량 미달의 보험설계사로 인해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FP·FC·RC·금융전문가 라고 부끄럼 없이 불러도 되는지 의문이다.

보험설계사가 생애재정설계와 보장분석을 생략한 채 다짜고짜 청약서를 내밀며 “상품내용을 잘 알고 가입한다”고 사인하라고 재촉하고, 완전판매 모니터링 시 ‘예’라고 답변하도록 시키며 판매수수료에 매달려 기존 가입자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장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됐고 사치스럽다.

보험설계사를 FP·FC·RC·금융전문가로 호칭하려면 그에 합당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험설계사 중 금투협이나 금융연수원 등에서 실시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보험설계사 중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에 전문가인 설계사가 몇 명이나 되는가?

보험설계사는 공인된 재무설계사가 아니고 공인된 금융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므로 보험설계사를 FP·FC·RC·금융전문가라고 부르는 것은 누가 봐도 과장이고, 나아가 보험 판매를 위하여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특히 취준생을 보험설계사로 도입하기 위해 보험설계사의 명칭을 감추고 금융전문가라고 태연하게 호칭하는 것은 취업 사기에 해당된다.

행여 착각하지 마시라. 보험설계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보험설계사라는 용어 대신 과장된 용어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우롱하는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FP·FC·RC·금융전문가는 당초부터 보험설계사와 관계없는 과장된 명칭이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용어다. 보험사들이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과장된 명칭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보험업은 믿음을 먹고 사는 업종이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신뢰가 무너지면 한 순간에 훅하고 갈 수 있다. 보험설계사를 보험설계사라고 불러야 할 주체는 당연히 보험사이고 보험설계사 자신이다.

지금 부터라도 미사여구의 허황된 명칭 대신 ‘보험설계사’를 ‘보험설계사’라고 당당하게 부르자. 보험설계사를 당당하게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 보험설계사를 스스로 존경 받는 명칭(직업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보험사와 보험설계사들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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