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벤처 이면에 폭언·폭행·성추행 등 갑질 만연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요구에도 5년째 ‘제자리걸음’

사진=배수람 기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사내 갑질 사태가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피해사례가 IT 업계 곳곳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주최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사례 보고’ 세미나가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는 전·현직 IT 업계 종사자들이 실제 겪었던 폭언·폭행 등 갑질 사례 발표 위주로 진행됐다.

롯데 하이마트 사내폭행 피해자로 증언에 나선 양도수 씨는 “지난해 12월 하이마트 쇼핑몰 IT 관리자로 재직하면서 팀장 및 매니저로부터 온갖 욕설과 폭언·폭행을 당했다”며 “수십명의 동료들이 보는 사무실 한가운데서 갑질을 당해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양 씨는 이를 하이마트에 신고했고 사측은 가해자 두 명을 직위해제 및 지방으로의 좌천을 약속했다. 그러나 징계 조치 후 불과 6개월 만에 가해자 두 명은 원래 직위로 복귀했다. 두 사람은 복귀한 이후에도 양 씨의 집 근처를 배회하며 비웃는 등 양 씨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다.

장향미 씨의 동생 고(故) 장민순 씨는 ‘영단기’, ‘공단기’ 등 인터넷 강의로 유명한 에스티유니타스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장 씨는 “회사는 창립 6년 만에 매출 4000억원을 달성한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썼지만 그 이면에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과 30% 넘는 퇴사율, 재직자의 정신질환 호소 등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씨는 “동생은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월 69시간 연장근로시간과 29시간 야간근로시간을 전제로 포괄임금계약을 맺고 수당 없이 일일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며 “성과지상주의와 실적압박으로 직원들끼리는 과열경쟁했고 직장 괴롭힘 문제가 유발됐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업무 강도는 스타트업 정신과 열정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장 씨에 따르면 동생 민순 씨는 입사 후 1년,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 회사에 휴직계를 냈으나 두 차례 반려 당하기도 했다.

휴직 후 복직한 민순 씨는 상사로부터 정확한 업무가이드 없이 결과물에 대한 질책을 감내해야 했고 매일 작성하는 업무일지에 반성문을 작성하라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강남노동지청에 동생의 갑질 피해를 신고했으나 제대로 된 근로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로와 괴롭힘, 탈진 및 번아웃 등을 반복하던 민순 씨는 올 1월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의 죽음을 ‘과로자살’이라고 표현한 장 씨는 “(과로자살은) 삶을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이 주는 고통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며 “이는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극한의 폭력이며 도망칠 수 없는 피해자가 아닌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진=연합뉴스

한 IT 스타트업에서 2년 6개월간 근무한 김현우 씨는 당시 근무했던 경험을 ‘열정페이’, ‘노동착취’로 표현했다.

김 씨는 “2년 반 동안 근무하며 용돈 명목으로 총 15만원 받은 게 고작이다. 지분관계가 복잡하면 투자받기 힘들다는 말에 구두로만 약속하고 (계약은) 뒤로 미뤘었다”며 “학업 포기를 강요당했고 사생활과 개인 물건 소지 등을 모두 금지 당하고 새벽을 지새우며 일했지만 누릴 것을 다 누리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으로 ‘함께’ 커나가자는 대표의 말을 믿고 따랐다”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김 씨는 대표가 가진 여러 개 사업체에 지분을 약속받은 유령 사원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업무 중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가) 대표로부터 추궁당했고 ‘너 이거 피하면 회사 내쫓기는 거야’라며 ‘변명하는 입이 문제다’라는 말을 들으며 입술에 피가 터지게 맞았다”며 “당시 그 일은 맞음으로써 성장할 기회를 얻은 훈장으로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의 직장 동료는 셔츠 색상을 잘못 입었다는 이유로 대표에게 골프채로 맞기도 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김 씨는 “투자한 시간이 있는 만큼 회사 내부 인원들은 회사에서 내쫓기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며 “비상식적인 생활이 지속돼 가면서 회사라는 집단 자체는 사이비종교처럼 변해갔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철희 의원은 “수많은 ‘양진호 회장’이 IT업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며 “더 이상 갑질, 폭력·폭행 등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이 응답해 효과적인 제도적 개선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IT노동조합과 함께 실시한 ‘2018 IT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IT업계 종사자 중 25.3%가 주 52시간 초과근무를 한다고 응답했다.

설문참여자(503명) 중 ▲상사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은 23.26%에 달했고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20.28%) ▲신체적 폭력(11명) ▲왕따 및 괴롭힘(24명) ▲성희롱·성폭행 피해(16명) 등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1년 내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고 응답했으며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응답도 19명(3.79%)에 달했다.

장재원 변호사는 “IT업계 가혹한 근로조건은 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며 “업계 특성상 프리랜서·비정규직이 많은 만큼 종국적으로는 파견법 자체를 폐지해야 하지만 어렵다면 사용사유와 파견대상업무 등을 명확하고 실효성 있게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직장 내 폭행 및 갑질에 대해서는 사전적인 구제수단도 없을뿐더러 실질적 구제수단도 없다”며 “인색한 위로금이 전부인 상황에서 입법적으로는 근로기준법 임금대장 작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사법적으로는 근로자의 연장근로사실에 대한 입증책임 완화 등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환민 팀장은 “근로감독 강화와 노동자들에 대한 심층 조사가 정례화돼야 하고 피해자의 신원이 철저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IT 업계는 남성 위주, 단일 성별 중심의 폐쇄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내기 쉽다”며 “경력단절 여성, 은퇴 중장년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고용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배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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