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1세기 ‘국가 부도 위기’로 시작, 감독 기능 강화 조치
3300여 개 기업 부도, 자살률 증가, 가정 해체, 실업난 속에서 제정
위기의 은행권 구조조정부터 최근 ‘9.13 부동산 대책’까지 감독…법제화 필요

1998년 2월 IMF 한파 위기 극복을 위한 대형 홍보관. 사진=연합뉴스

‘은행업감독규정’은 금융기관 감독에 관한 금융위원회의 소관사항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문서를 말한다.

은행법, 외국환거래법, 한국산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금융위설치법,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등과 그 시행령 그리고 기타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은행 감독에 관한 사항을 정리해서 모은 규정이다.

‘은행업감독규정’이 처음 제정된 때가 1998년 4월 1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정부는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금융감독기구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시행했다.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의 무분별한 과잉투자와 이를 방조한 국가의 금융정책, 외국 단기자본의 공격으로 일어났다. 6.25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불렸고 2001년까지 약 4년간 지속됐다. 이처럼 한국의 21세기는 국가 부도 위기로 시작됐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 10여 년간의 경기 호황 시절 동안 쌓았던 자본을 소모했고 대규모 실직과 무더기 부동산 매각으로 인해 중산층의 비율은 급격하게 줄었다. 기업 설비투자는 –53%, 환율은 사상 최고인 달러당 2000원을 넘어섰다. 당시 정부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300억달러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외채는 6배에 육박하는 1700억달러였다.

또한 재계 3위 대우, 4위 기아, 12위 한라, 14위 한보, 26위 삼미에 이어 해태, 진로그룹 등이 부도를 맞았고 중소기업은 하루에 100개 업체가 문을 닫는 등 1997년 12월부터 1998년 1월까지 3300여 개의 기업이 줄도산했다. 실업률은 3.1%에서 두 달 만에 8.7%로 급등했다. 당시 체불임금이 6000억원이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업률은 10%를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감행한 구조조정으로 자산양극화와 노동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돼 지금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취업난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7년 11월 정부는 국가 지불불능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조자금을 요청했고 IMF는 구조금융 지원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금융구조조정, 재정긴축 등의 처방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해 12월 5일 소위 ‘IMF합의’에 의한 경제정책이 시작됐다.

이후 역대 최단기간에 외환위기를 벗어났지만 자살률 급증, 가족 해체, 출산율 저하, 양극화, 청년실업을 비롯한 고용불안이 사회 문제로 급부상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은행권에서는 구조조정 등 전반적인 개혁과 과도한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들이 이어졌다. 이때 등장한 ‘은행업감독규정’은 종합적인 위험관리 시스템 구축과 재무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확충에 필요했다. 이로 인한 외환보유액 증대, 단기외채 축소, 재무건전성 개선 등에 힘입어 국가 차원뿐만 아니라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도 대외신인도가 크게 제고됐다.

외화 부문에서는 외화유동성 부족에 따른 금융회사의 대외지급 불능 사태에 대비해 외화유동성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원화 국제화가 미흡한 상태에서 외환위기와 같은 악재가 재발할 경우 금융회사의 대외지급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외화에 대해 별도로 유동성비율을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부채가 많은 기업집단(계열)을 주채권은행으로 하여금 통합 관리하게 했다. 기준이 되는 신용공여는 기업의 전체 채무 중 금융회사 채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기업의 대출금을 비롯해 지급보증과 기업어음, 매입외환, 사모사채 등이 망라된 채무를 말한다. 전년도 말 은행권과 종금, 보험사 등 금융회사의 신용공여 잔액을 기준으로 1위부터 60위까지 기업집단을 선정해 지정한다. 한 기업집단이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면 계열사 간 지급보증을 통한 신규 여신 취급이 불가능하게 되고 기존에 있었던 지급보증도 해소해야 한다. 주채무계열의 주채권은행은 담당 계열의 경영정보를 관리하고 필요시 약정 체결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하게 했다.

부실금융기관 결정을 위한 자산과 부채의 평가 및 산정과 관련해 ‘은행업감독규정’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에 따라 거액의 금융사고 또는 거액 여신의 부실화 등으로 자산의 건전성이 크게 악화돼 금융감독원장이 부채가 자산을 초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은행, 총 자본비율 100분의 4 미만 또는 기본자본비율 100분의 3 미만 또는 보통주자본비율 100분의 2.3 미만인 은행, 제33조의 규정에 의한 경영실태 평가 결과 금융감독원장이 정하는 평가 부문의 평가등급이 5등급(위험)으로 판정된 은행을 평가 대상으로 정했다.

은행 이용자 권익 보호와 관련해 은행은 금융거래 시 다수의 이용자와 계약을 위해 미리 작성한 계약의 내용을 말하는 금융거래약관을 원칙에 따른 공정 작성, 건전한 금융거래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 또 관계 법령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약관의 제정 및 변경 절차, 약관의 관리방법, 약관의 공시, 임직원 교육 등 약관의 작성·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 약관을 제정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약관 내용의 관련 법규 위반 여부, 이용자의 권익 침해, 분쟁 발생 소지 등에 대해 준법감시인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또한 원화·외화 대출과 원화 지급보증 중 융자담보용 지급보증, 사채발행 지급보증, 사모사채 인수, 보증어음 매입 등 여신거래를 할 때 여신실행일 전후 1월 이내에 예금·적금, 상호부금, 금전신탁 등을 금융감독원장이 정하는 방법으로 산출된 월수입 금액이 여신금액의 100분의 1을 초과해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은행업감독규정’은 20년 동안 83번 개정됐다. 그중 2013년 12월 국내 은행에 도입된 바젤III는 은행이 8%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BIS비율 외에도 2015년까지 매년 기본자본비율은 4.5%, 5.5%, 6% 이상, 보통주자본비율은 3.5%, 4%, 4.5% 이상을 단계적으로 준수하도록 했다. 기본자본은 자본금·자본준비금·이익잉여금 등으로 구성되고 보통주자본은 현금화가 쉬워 은행의 손실을 가장 먼저 보전할 수 있는 보통주·보통주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 등으로 구성된 자본을 말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적기시정조치를 내려 영업정지를 시킬 수 있다”며 “총자본 8%, 기본자본 6%, 보통주자본 4.5% 이상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경영개선권고, 총자본 2%, 기본자본 1.5%, 보통주자본 1.2% 이상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가장 강력한 영업정지에 해당하는 경영개선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9.13 주택시장 안전 대책'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시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은행업감독규정’이 이목을 끈 이유는 지난 9월 13일 시행된 정부의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과 관련한 개정 때문이었다.

금융위는 10월 25일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필요한 개정 사항 등을 감독규정에 반영하기 위해 ‘은행업감독규정’을 비롯한 5개 금융업감독규정에 동일하게 일괄 개정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택보유세대의 규제 지역(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취급과 관련해 2주택 이상 다주택세대는 규제 지역 내 주택 신규 구입을 위한 주담대를 제한하되 실수요 등이 인정된 1주택세대는 규제 지역 내 추가 주택 구입을 위한 주담대를 허용한다.

규제 지역 내 고가주택(공시가격 9억 초과) 구입 목적 주담대와 관련해서는 규제 지역에서 고가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는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무주택세대가 주택 구입 후 2년 내 전입하는 경우에는 고가주택 구입을 허용한다.

1주택세대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와 관련해 1주택세대는 현행과 동일한 LTV·DTI 비율을 적용하고 담보물건당 연간 1억원으로 대출한도를 제한하되 여신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1억원 초과대출도 허용해 실수요자의 자금 수요를 최대한 보호하도록 했다.

2주택 이상 세대는 현행보다 10%p씩 강화된 LTV·DTI 비율을 적용하고 연간 1억원으로 대출한도를 제한하되 여신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관련 규정의 예외를 허용했다.

또한 차주가 주담대 만기 전에 대출을 상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차주가 금융회사와 체결한 약정 이행 여부를 확인하도록 명시했고 금융회사 여신심사위원회 승인 결과를 매분기 금융감독원장에게 보고하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주택임대업대출 취급 시 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하되 적용 지역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로 제한하고 주택을 신규 건설해 임대하는 경우에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규제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

주담대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과 관련해서는 LTV와 동일한 DTI를 적용하되 1억원 이내 소액대출 등에 대해서는 DTI 적용을 배제하는 등 서민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예외 규정이 개정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은행업감독규정’은 20년 전 국가 부도 위기 때 감독규정을 모아 제정됐음에도 법제화가 되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제정 작업에 참여했던 관련자들도 지금은 대부분 은퇴해 ‘은행업감독규정’의 탄생 배경이 잊히고 있다.

‘은행업감독규정’을 비롯해 1997년 금융개혁법안과 관련된 내용을 잊으면 또 다른 국가 부도 위기가 온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규정을 법제화하는 것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강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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