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암보험에서 ‘암’인지 ‘용종’인지 여부에 따라 보험금이 크게 달라지므로 암의 판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암의 판정에 대해 암환자와 보험사 간 벌어진 소송에서 대법원이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재판부는 환자의 용종이 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하급심(1심,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다. 작은 용종이라도 병리과 전문의가 악성신생물로 판단하면 암으로 판정하여 가입자에게 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2018.10.5보도)

대법원은 작은 ‘용종’이라도 병리과 전문의가 조직검사 보고서에서 ‘악성신생물’로 판단했다면 약관을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고, 감정 의사가 다른 의견을 낸 경우라도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따라 암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2015년 대장 내시경 검사 중 직장에서 0.4cm 용종이 발견되어 용종절제술을 받았다. 병리과 전문의는 조직검사 결과를 토대로 종양 발견 보고서를 썼고, 이를 토대로 A씨 주치의는 해당 용종이 ‘직장의 악성신생물’이라는 진단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암’이 아니라 ‘경계성 종양’이라며 소액의 보험금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거절했다.

이에 환자는 약관에 정한 보험금 97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보험사 판단이 옳다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감정 요청을 받은 의사들이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고, 병리과 전문의가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최종 진단까지는 내리지 않았음을 문제 삼았다. A씨의 주치의는 병리과 전문의가 아니며 약관대로 병리과 전문의가 최종 진단까지 내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A씨의 종양을 암으로 보는 해석도 가능하다”며 “약관 조항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약관의 해석) 제2항에서 정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험약관 조항이 객관적으로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그 각각의 해석이 합리성이 있는 등 당해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2013년 약관 조항이 다의적으로 해석돼 명확하지 않은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재 확인한 셈이다.

보험약관에는 보험가입자를 보호하는 ‘약관의 해석’ 조항이 들어 있다. “회사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이 내용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자신들이 만든 조항이지만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암’과 ‘경계성 종양’의 판정에 대해 암환자와 보험사 간 분쟁이 지금까지 수 없이 발생됐지 만, 보험사 주장에 막혀 대부분 암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암 진단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병리 전문의가 직접 내린 암 진단만 확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험사들이 계속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치의는 병리과 전문의가 아니며 약관대로 병리과 전문의가 최종 진단까지 내려야 한다”는 보험사 주장을 뒤집었다. 약관의 병리학적 진단에 대하여 병리과 전문의가 최종 진단까지 내리지 않더라도 병리학적 진단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감정 의사가 용종을 암이 아니라고 진단을 내렸더라도, 앞서 병리과 전문의가 암이라고 판단을 내렸다면, 암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리 전문의가 검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작성했고 의사가 이를 토대로 진단을 내렸다면 약관에서 말하는 병리학적 진단으로 암 확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암보험에서 병리과 전문의의 최종 진단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고, 이를 이유로 암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가입자 일부는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은 이번 판결에 따라 암보험 약관에서 암의 판정방법을 가입자들이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약관해석의 원칙’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보험사들은 환자 주치의가 발급한 진단서를 외면한 채 근거가 없고 법적 효력이 없는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를 버젓이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일쑤였다. 보험금을 적게 주려고 중대한 암을 ‘경계성 종양’으로 고집하다 패소한 사건도 있다.(2017.11.16 보도) 재판부는 “보험사가 제시한 대한병리학회의 해당 의견이 학계 내에서 통일된 견해라고 하기도 어렵다”며 “보험 계약 당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반영되지도 않았고, 이를 기준으로 삼기도 적절하지 않다”며 보험사 패소를 판결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보험회사가 만든 암보험 약관의 애매모호한 문구(직접적인 치료)가 계속 말썽이 되고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환자들이 암 입원보험금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사건의 발생 원인이 누구에게 있고 누구 덕분에 먹고 사는지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시간 끌 일이 아니고 뜬금없이 ‘보험사 주주 배임’이라는 주장을 해서도 안 된다. 보험사의 주된 의무는 ‘보험금 지급’이지 ‘주주 챙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암보험 약관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가입자 피해구제 대책은 외면한 채 약관 일부만 변경해서 내년 초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치료’ 의 범위와 요양특약 분리에 대하여 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추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어디 있는지 말이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금융위가 나설 일이 아니 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금융위의 암보험 가입자에 대한 무관심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것이 ‘소비자 보호’인지 의문이다. 소비자들이 어찌하여 금융당국을 불신하고 화를 내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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