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김영한 수첩에 ‘금리인하, 한은 총재’ 언급 후 10개월, 4차례 인하
새누리당, 총선 공약 ‘한국판 양적 완화’ 위해…한은, 또 금리인하
박근혜 정부가 금리인하 압박 위해 보수언론에 기사 청탁, 안종범 메시지 공개

이주열 총재가 22일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박근혜 정부의 압박을 받고 금리를 인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구로구을)은 22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수첩에 한국은행과 금리 관련 내용 등이 언급된 이후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2015년 5월 24일 안종범 수첩에 ‘성장율 저하, 재정 역할, 금리인하, 한국은행 총재’라고 언급됐다. 이후 한국은행은 6월 11일 0.25% 금리를 인하했다.

박 의원은 “새누리당이 2016년 3월 총선을 앞두고 공약으로 내건 ‘한국판 양적 완화’를 위해서 안종범 수첩은 2016년 4월 27일 ‘구조조정 원칙과 방향, 양적 완화’, 4월 29일 ‘한은 총재’, 4월 30일 ‘한은’이라고 언급돼 있다”며 “이후 40여 일 뒤인 2016년 6월 9일 한국은행은 1.50%에서 1.25%로 또 금리를 인하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황은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수첩에도 적혀 있다.

김 전 수석 수첩에는 2014년 8월 14일 ‘금리인하 0.25% ↓ → 한은은 독립성에만 집착’이라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인하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리인하 이후 2015년 6월까지 불과 10개월 사이 4차례에 걸쳐 2.25%에서 1.50%로 급격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당시 이 총재는 금리인하 배경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 성장세가 전망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물가상승률도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5월 24일자 안종범 전 수석 수첩. 자료=박영선 의원실
2016년 4월 27일자 안종범 전 수석 수첩. 자료=박영선 의원실
2016년 4월 29일자 안종범 전 수석 수첩. 자료=박영선 의원실

안종범 수첩에는 ‘LTV-DTI, 가계부채’ 등도 언급됐다. 날짜는 2014년 7월 10일과 15일이었다. 이후 다음 달인 8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전 지역에 70%까지 모든 금융권에 풀어주고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모든 금융기관에 수도권 60%까지 풀어주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시행해 부동산시장의 인위적 부양을 시도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권은 경제성장률을 인위적으로 올리기 위해 금리인하를 끊임없이 압박했고 한국은행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리를 인하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의원은 “박근혜 정권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위적인 금리인하로 인해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도 실기하고 좀비기업을 양산하게 됐다”며 “이 같은 정책범죄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봉기 한국은행 정책총괄 팀장은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로 경기가 위축됐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물가상승률이 너무 낮아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왔고 제로 금리, 양적 완화까지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을 만큼 금리인하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총재가 박근혜 정권 당시 서별관 회의에 총 9회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외부 압박에 의한 금리인하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잃었다.

박 의원은 “이 총재가 금리를 본격적으로 인하한 2014년에 5회, 2015년 1회, 2016년에는 3회 서별관 회의에 참석했다”며 “서별관 회의에 참석한 2014년 6월 13일 이후 두 달 뒤인 8월 14일 금리를 인하했다. 9월 14일 참석 후에는 1달 뒤인 10월 15일에 금리를 인하했다”고 밝혔다.

또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금리인하 압박을 위해 한 보수언론에 기사를 청탁한 정황이 담긴 안종범 전 수석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신뢰도가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금리인하 직전 정찬우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은 안 전 수석과 사전논의한 뒤 “한은이 금리를 50bp, 즉 0.5%p 내리도록 말해야 한다”고 안 전 수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정감사에서 “한국은행이 경제주체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과 정권실세의 외압에 영향을 받았다면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된 중대한 사안이다”고 강력 비판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자료=박영선 의원실

파이낸셜투데이 강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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