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암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우선이다. 암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소비자들이 암보험을 가입하고 있다. 암보험 가입자가 2016년 기준 29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60%가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암보험이 가입자들에게 악명(惡名)이 높다. 보험금 받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암보험 분쟁이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당초 보험사가 만든 애매한 약관 조항이 화근이었다. 약관에 “암의 직접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한 경우 암 입원급여금을 지급한다”고 되어 있지만, 정작 ‘암의 직접적인 치료’가 어떤 것인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암의 직접적인 치료가 아니라며 툭하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 왔고, 특히 요양병원 암환자들이 청구한 암 입원비는 대부분 거절해 왔다. 약관 조항(암의 직접 적인 치료 목적)과 보험사에 유리한 대법원 판결(2008년, 2013년)을 근거라고 주장해 왔고, 금감원도 법원 판례를 이유로 보험사와 같은 입장이었다.

이에 암환자들은 “암치료가 아니라면 요양병원 치료를 왜 받겠느냐?”며, “요양병원 입원도 암 직접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며 보험사 민원, 금감원 분쟁 조정, 법원 소송 등을 통해서 억울함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거절됐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 이다.

그러다가 M손보사가 암환자에게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패소(2016.9.9.)했다. 법원은 약관에 “회사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치료는 암을 제거하거나 암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한 치료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암 자체 또는 암의 성장으로 인하여 직접 발현되는 병적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한 치료를 포함하는 점, 입원이 항암화학요법 치료 등을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입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 불구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분노한 요양병원 암환자들이 ‘보암모(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라는 단체를 만들어 금감원 앞에서 몇 차례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암보험 약관 분쟁이 세간에 크게 알려졌다.

금감원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약관을 개정해 보겠다고 운을 뗐고, 윤석헌 금감원장은 ‘소비자 보호 혁신과제’를 발표(2018.7.9.)하면서 “암 진단 후 요양병원 입원 시, 암 직접 치료가 아니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9월 27일 보도자료(암 입원보험금 분쟁 예방을 위한 암보험 약관 개선 추진)를 통해 내년 1월부터 판매되는 암보험 약관에 ‘암의 직접치료’ 정의(암을 제거하거나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치료로서, 의학적으로 그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어 임상적으로 통용되는 치료)를 신설하고, 포함 항목 5가지와 불포함 항목 3가지를 명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요양병원 암 입원보험금을 특약으로 분리,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금감원 개선안 곳곳에서 발견된 허점이다. 반쪽짜리 대책인 이유다.

첫째, 암보험 피해자(보암모 포함)에 대한 구제 대책이 빠져 있다. 금감원 개선안은 새로운 암보험 가입자부터 적용될 뿐, 기존 가입자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존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으려면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암의 직접치료 포함 사유(5가지)와 불포함 사유(3가지)가 합당한지 의문이다. 불포함 사유는 암 입원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것인데, 왜 그런지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3가지 사유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빌미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에 유리, 가입자에게 불리해 보인다.

셋째,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제대로 산출할지도 의문이다. 암 입원률로 보험료를 산출할 때 3가지 사유를 명확히 제외해야 하는데 미덥지 못하다. 만약 약관 내용과 다르게 입원률이 산출되어 보험료가 책정된다면 보험사들은 기초서류를 위반하는 것이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 된다.

넷째, 불포함 사유의 단서조항도 큰 문제다. 가입자가 단서조항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면 분쟁이 벌어진다. 또한 ‘직접 치료’ 때문에 현재까지 소모적 논쟁을 벌여 왔는데, 단서조항에 ‘직접’이란 용어를 다시 사용하다니 황당하다. ‘필수불가결한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도 분쟁의 화근이다. 이처럼 혹을 떼려 하다가 오히려 혹을 붙인 셈이 되고 말았다.

다섯째, 요양특약을 별도 구분, 가입하게 한 것은 보장 범위를 축소한 것이고, 동일한 보장을 받으려면 요양특약 보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요양특약은 암의 직접치료 여부와 상관 없이 보험금이 지급되므로 보험료가 크게 인상될 것이고, 결국 가입자 부담만 늘게 된다.

금감원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의지와 역량이 있다면, 본질을 외면한 채, 약관만 어물쩍 변경해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기 가입자 피해 구제 대책을 먼저 마련한 후, 약관을 변경하는 것이 순서다. 위험률 산출통계와 약관 보장내용이 일치해야 하므로 암 입원률 산출 시 적용된 대상자와 약관의 보험금 지급 대상자가 일치하는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또한 긁어 부스럼 만드는 용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가 보험료를 내는 것은 보험사와 금감원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보험사와 금감원은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 덕분에 먹고 산다.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금감원의 처리와 보험사들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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