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2심 판단 차이 없었음에도 뒤바뀐 판결,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형량과 동일, ‘3·5 법칙’ 공식화하나
법조계 “결과 정해 놓고 하는 ‘재판쇼’” 비판 거세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면서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는 롯데그룹 경영비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를 받는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경영비리와 관련해서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제3자 뇌물공여 역시 실형이 선고된터라 2심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지난 8월 먼저 선고된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점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열린 신 회장의 2심에서 재판부는 뇌물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교부한 피고인에게 책임을 엄히 묻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뇌물을 건넨 것은 맞지만,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롯데그룹이 면세점 특허와 관련해 별다른 특혜를 받지 못한 것으로 봤다.

신 회장의 형량은 얼마 전 항소심에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받은 형량과 일치한다. 8개월 전 비슷한 혐의로 구속된 이 부회장은 2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다만 2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 규모가 1심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신 회장의 경우 1심과 2심에서 뒤바뀐 판단이 없었음에도 ‘실형’이 ‘집행유예’로 둔갑했다는 점이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대표 재벌 총수가 잇따라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일각에서는 ‘3·5 법칙’이 사실상 공식화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5 법칙’은 재벌 총수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하고,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석방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에서는 3년 이하의 징역에 대해 정상 참작 사유가 있을 경우 최대 5년 이하 기간의 형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5 법칙’이 재벌 총수들에게 적용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탈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났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같은 해 같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2심에서 징역 3년 등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이외에도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구자원 LIG 명예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 ‘3·5 법칙’을 경험했다.

드물지만 예외도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4년 횡령 혐의로 1심과 2심 모두 징역 4년을 선고 받았으며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2015년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2심에서 징역 3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 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에서 실형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하고, 2심에서는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을 참작하여’, ‘자유로운 기업활동의 보장을 위하여’라는 말을 앞세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에게 사법부 불신의 이유를 제공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집행유예’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재판쇼’를 하는 것과 같다”며 “재벌 범죄에 대한 엄정한 잣대를 갖다 대지 않으면 ‘법 위의 재벌’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롯데는 항소심 선고 직후 “재판부의 온당한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그간 미뤄왔던 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선진화에 더욱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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