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 5편-철의 왕국 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였다

금관가야는 농업국이 아닌 국제 허브항을 보유한 해양왕국이었다. 가야의 철정(鐵鋌)은 고대의 ‘반도체’이며, 동아시아의 화폐로 통용됐다.

금관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는 대성동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철기 부장품을 통해서 확인된다. 고대사회에서 철은 오늘날 석유 및 핵무기에 비유된다. 그 자체가 사회변동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강철을 가진 나라가 주변 일대를 지배했다.

금관가야 이전부터 한반도는 철기가 사용됐다. 경남 창원시 ‘의창 다호리 유적’이 그 증거다. 의창 다호리 유적은 삼한시대 연구, 특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대 변한의 실체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고고학 자료를 제공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칼, 창, 화살촉 등 무기류와 각종 형태의 도끼, 따비, 낫 같은 농기구가 출토됐다. 이는 기원전 1세기경 이 지역에서 이미 철기가 실생활에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자료이며, 가야의 모태인 변한이 철기사회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이곳의 기원후 1세기경 고분에서 철광석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대 이미 철 생산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변한지역이 철 생산 및 공급지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고문헌인 ‘삼국지 위서동이전 변진조’에 잘 나타나 있다. “나라에서 철(鐵)이 생산되는데 한(韓), 예(濊), 왜(倭)가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는 철을 중국의 화폐처럼 사용했고,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공급했다.(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이 고문헌에 등장하는 나라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역사학자들은 이곳이 변한 혹은 가야의 어느 지역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다호리 뿐만 아니라 김해 양동‧대성동, 부산 복천동 고분 등에서도 다량의 철기가 쏟아졌다. 이곳에서 철기제작에 이용되는 단야구( 鍛冶具‧금속제품을 만드는 일련의 작업공정에 사용되는 연장)까지 출토돼 가야와 철과의 관계를 짐작케 했다.

2001년 인제대학교 김해발전전략연구원은 ‘가야 철기유물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가야 철기문화 복원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연구대상 철기는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와 철촉, 철정, 꺽쇠, 주조철부 등 1~5세기 철기 유물 12점이었다. 연구진들은 이 철기들의 미세조직을 관찰하고, 공학적 분석을 통해 당시 ‘철 기술체계’를 역으로 추론했다.

이들은 연구를 통해 전성기때 가야는 동북아 최대의 철기 제작기술을 보유한 철강산업 강국이며, 금관가야는 최소 4세기까지 신라보다 세력이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연구진들은 가야의 철기 기술체계는 단조에 의한 형태가공, 표면침탄법에 의한 제강과정, 열처리 과정 등 세단계로 이뤄졌음을 파악했다.

당시 연구진으로 참여한 이영식 인제대 사학과 교수는 “이러한 3단계 제작기술은 철기생산에 관련된 각기 다른 공방의 존재와 전문가 조직이 있었음을 단정하게 한다”며 “나아가 이들이 장악했던 강력한 정치권력, 즉 ‘철의왕국’을 확인시켜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가야의 기술자들은 필요에 따라 강 소재의 기계적 성질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효과적인 열처리 기법도 활용한 것으로 분석됐다”며 “주된 열처리 기법은 담금질이며 제한된 부위에만 담금질 효과가 미치도록 하는 특별한 기술도 적용됐다”고 강조했다.

함께 참여했던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주조철부 역시 완성된 제품을 녹지 않을 정도의 높은 온도에 장시간 유지시키는 특별한 열처리를 했다”며 “이렇게 생산된 주조철부는 실제 도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주조철부가 실용도구라는 금속공학적 분석결과는 부산 복천동 21, 22호분 등 대형 고분의 묘광을 팔 때 이 철부가 실제 사용된 것으로 보여 고고학적 연구성과와도 일치한다”고 전했다.

가야의 주조철부에서는 상당량의 비소(As)가 검출됐다. 이는 이 유물에 사용된 철광석의 산지를 추정하게 했다. 연구진은 철부의 성분을 통해 울산 달천광산에서 채굴된 철광석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연구진을 주도했던 박장식 홍익대 금속공학과 교수는 “가야의 철기 기술체계는 형태가공-제강공정으로 이루어지는 신라식 기술체계와 비슷하다”며 “제강공정-형태가공순으로 이루어지는 백제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가야가 ‘철의왕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지금까지 가야 철의 생산 기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에는 김해, 창원, 밀양, 합천, 양산, 안동 등지의 가야 영역지역에 철산(鐵山)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불무골‧쇠통섬‧똥뫼‧금곡‧야로‧생철‧생림 등의 철산지를 암시하는 지명이 많으며, 지금도 적지않은 철똥(슬래그)이 발견되고 있다.

밀양 사촌은 6세기때 제철유적으로 확인된 곳으로 몇해 전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 주변에는 철재(鐵滓‧슬래그)가 야산을 이룰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다.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제련로 7기, 송풍관 및 노벽 조각 등이 확인됐다. 제련로의 조업시기는 함께 출토된 토기를 통해 6세기 전반~7세기 전반으로 추정됐다. 이때는 신라가 가야의 철 생산 거점을 장악했을 거점이 높다.

경남 함안에도 가야 철과 관련된 지명이 있다. 경남 함안군 군복면 월촌출장소 인근에는 ‘쇠똥섬’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농경지와 맞닿은 구링지에는 슬래그로 추정되는 흑갈색의 유지질 돌이 수북히 쌓여 있다. 이곳에서는 회청색 경질토기편도 채집됐다.

주변 정황상 야철지가 분명하나 그 시기를 두고 논란중이다. 지역 향토연구자들은 가야시대 야철지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김해박물관측은 고려 초기 제철지일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별천), 군복면 원북리 신사동, 군복면 덕대리 대암동, 군복면 주동리 등에도 야철지가 있다. 특히 주동리에는 고인돌군과 고분군이 산재하고 많은 슬래그와 노(弩) 파편이 수습되어 가야시대 야철지일 가능성이 높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돈평마을도 가야시대 철산지로 추정되는 지역 중 하나다. 돈평마을 뒷산은 불무골(또는 불뫼골)로 불리며 주명에는 금평(金平)마을, 금굴동과 강은 철산을 암시하는 지명들이 있다. 지역 사학자는 “문헌 기록이나 지명, 현장에 널린 슬래그 등으로 볼 때 가야의 철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고령은 약 1600년 전 대가야의 도읍지였다”며 “대가야는 서기 400년 전후 여로지역의 철산지를 확보하면서 강력한 무력과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켜 가야연맹을 주도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가야지역 철기생산 유적지는 부산 동래패총, 김해 대성동 소성(燒成)유구, 김해 봉황동 유적, 고성패총, 창원 성산패총 등이다. 밀양 사촌유적과 양산 물금 유적에서는 제련 공정을 알 수 있으나 신라의 철 생산 집단으로 파악되며, 시기도 6세기 이후다.

아직까지 거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야 철 생산기지. 이를 찾아내고 해명되어야 ‘철의 왕국’ 가야가 제대로 세워질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