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의 보험이야기] 암보험과 즉시연금 사건의 교훈
[오세헌의 보험이야기] 암보험과 즉시연금 사건의 교훈
  • 파이낸셜투데이
  • 승인 2018.08.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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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사들이 애매모호하게 작성한 보험약관으로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간 분쟁이 발생해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자살보험금 사건으로 한동안 소동을 벌이다가 가까스로 봉합됐는데, 이번에는 암보험과 즉시연금의 약관 분쟁으로 세간이 시끄럽다.

암보험 약관분쟁은 암 진단(수술) 후 요양병원으로 옮겨 입원한 환자들이 보험사에 암치료비를 청구했지만 약관에 정한 ‘암의 직접적인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시작됐다. 급기야 화가 난 환자들이 단체로 시위를 벌이면서 크게 알려졌다. 금감원은 암보험료 산출 시 요양병원치료비 실적이 반영됐는지 확인도 없이 보험사들에게 전향적으로 판단해서 치료비를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금감원 의도대로 치료비를 지급하면 주주배임에 해당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황당하다. 금감원이 보험료 확인도 없이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지급하라는 것이 황당하고, 보험금 지급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보험사가 감히 주주 배임을 운운한 것도 황당하기 때문이다.

보험은 상호부조의 제도로 계약자가 낸 돈으로 운영되므로 보험계약자가 주인이다. 보험사는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잘 관리해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머슴(위탁관리자)이다. 그래서 보

험사를 ‘고객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른다. 보험사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가? 머슴이 주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이를 망각한 채 보험사 주주의 배를 채우겠다니 황당한 것이다.

즉시연금은 계약자가 낸 일시납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뺀 금액을 공시이율로 운용해서 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보험료 원금을 돌려주는 생보사의 상품이다. 그런데 보험사들은 즉시연금 판매 시 이 사실을 가입자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뒤늦게 분쟁이 발생되자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지급한다는 문구가 약관에 있으니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사나 상품별로 환급방식, 금액이 다르다며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도 황당하다. 가입자는 산출방법서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산출방법서를 설명하지 않았고 약관에 연금 산출방식의 내용도 없다.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고 연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즉시연금을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비 공제 설명 누락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하지만, 오히려 ‘보험의 기본 원리’를 주장하며 대들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보험사 주장이 설득력이 없고 약관 내용조차 주장할 근거가 아닌 것이다.

암보험과 즉시연금 사건 모두 애매모호한 보험약관이 화근이었고, 해당 내용을 가입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보험약관을 애매모호하게 작성한 것은 보험사였고,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것도 보험사였으므로 이로 인한 가입자들의 피해는 당연히 보험사 책임이다.

보험사들은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잘 알고 있지만, 외면해 왔다. 특히 분쟁 발생 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관에 ”회사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라고 명시해 놓았는데, 자신들이 만든 이 조항을 애써 외면한 채, 보험사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보험금 지급을 회피했으니 보험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보험사가 “금감원이 약관 심사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반하장이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분쟁의 약관은 표준약관이 아니라 개별상품 약관이기 때문이다. 개별상품 약관은 표준 약관을 모태로 보험사들이 상품 특성을 반영하고 지급사유 및 보장내용을 설정하여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다. 표준약관도 금감원이 업계와 사전 협의해서 만든 것이다.

금감원은 명색이 보험사의 감독당국인데, 이름이 무색하게 생보사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볼썽 사납다. 금감원장이 가타부타 구체적인 사유와 근거도 없이 즉시연금 일괄 구제를 발표(7월 9일)한 것은 성급해 보인다. 올바른 금감원이라면 보도자료를 통해 생보사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바로 잡도록 구체적으로 조치했어야 한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일괄구제라는 것은 보험사에 대한 ‘갑질’로 비쳐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자살보험금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보험사의 하극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금감원이 당초부터 신속, 명확하게 교통정리 했더라면 이런 수치스럽고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험약관 분쟁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보험사들이 소비자를 경시하는 풍조와 불합리한 관행이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다. 자살보험금과 암보험 사건은 보험사들이 가입자 배려 없이 보험사 중심으로 만든 애매모호한 약관이 화근이었고, 즉시연금 사건은 보험료 중에서 사업비가 공제된다는 사실을 가입자에게 설명하지 않은 악습(惡習)이 문제였던 것이다. 일반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들은 상기 사건을 통해서 약관의 중요성, 사업비 설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다시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약관을 가입자가 알기 쉽게 고치고, 사업비 공제를 약관에 명시한 후 가입자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약관에 산출방법서 이름만 표시한 것은 면피용이고 가입자에게 피해를 주는 불공정한 약관이다. “보험료에 보장보험료와 사업비가 포함되어 있고, 이를 뺀 저축보험료를 원금으로 하여 여기에 공시이율을 적용해서 적립금을 쌓은 후, 그 금액을 기준으로 보험금(연금, 해지환급금, 만기보험금 등)을 지급한다”고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사업비 공제는 보험 가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가입자에게 반드시 알리고, 실제로 알린 기록을 증빙으로 보관해야 한다.

고객헌장을 선포하고 윤리준칙을 만들어 호들갑스럽게 보여주기, 생색내기 할 일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인 일도 하지 못하면서 ‘고객 만족’, ‘정도 영업’을 외칠 일이 아니다. 보험사가 하지 않으면 금감원이 적극 나서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고 시급히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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