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료는 순보험료와 사업비(부가보험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료에는 사업비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순보험료는 사망이나 만기 보험금 지급에 사용되는 보험료이고, 사업비는 보험사가 사용하는 경비로 보험설계사 수수료를 포함해서 계약 유지 관리비용으로 사용된다.

사업비가 많을수록 보험료가 비싸고 적을수록 보험료가 저렴하다.

그런데 많은 소비자들이 보험료에 사업비가 포함돼 있는 사실을 몰라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보험 가입 시 보험사로부터 사업비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험은 중도 해지 시 원금 손실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정작 급전이 필요해서 해지를 하여 원금 손실을 보고 나서야 사실임을 경험하고 사업비 공제 때문이라는 설명을 비로소 듣게 된다. 이처럼 사업비는 소비자 이익과 직결된 것인데, 보험사들은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즉시연금 미지급금’ 사건도 사업비 때문에 발생했다. 생보사들이 즉시 연금 판매 시 사업비 설명을 소홀했고, 가입자들은 사업비 공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시 연금은 가입자 16만명에 금액은 최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시연금은 보험료를 일시에 내고 곧바로 매달 연금으로 받는 상품이다. 비과세 혜택이 있고 보험사가 약속한 이자가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다고 해서 한동안 고령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사망하기 전까지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을 나눠 받는 ‘종신형, 매달 연금을 받다가 만기 때 낸 보험료 원금을 돌려받는 ‘만기환급형’이 있다.

논란이 된 것은 ‘만기환급형’으로, 예를 들어 가입자가 1억 원을 맡기면 보험사들은 회사 운영 에 쓰이는 사업비 600만원을 뗀 나머지 9400만원을 공시이율로 운영해서 생긴 수익을 연금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가입자들은 “이런 사업비 공제가 약관에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1억원에 대한 연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금수령액이 예상보다 적다”며 일부 가입자가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금감원은 2017년 11월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2018년 6월에도 같은 이유로 제기된 조정 신청건에 대해 미지급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합당하지 않다며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급기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일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보험사가 고객들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즉시연금’을 일괄 지급하라”고 압박했고, 11일에는 금감원이 즉시연금 피해자를 한꺼번에 구제하는 ‘일괄구제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보험사들이 반발하며 금융감독원과 생보사들의 대결 양상으로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노심초사하며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약관에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해 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업비를 공제한 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보험사만 알고 있을 뿐, 가입자는 ‘깜깜이’였다. 특히 보험사들은 산출방법서의 내용을 설명하지도 않았고 보여 주지도 않았다. 가입자들은 산출방법서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가입했다. 당초부터 불공정한 약관이고 불완전판매인 것이다. 따라서 보험사들 주장은 면피하려는 꼼수이고 변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보험사들의 불합리한 관행과 악습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자살

보험금 사건이 그랬고, 예치보험금 이자 사건에 이어 암보험금 약관 분쟁도 동일한 모양이다. 보험사가 가입자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만든 불명확한 약관이 화근이었다. 더구나 “회사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라는 약관조항도 외면한 채, 보험사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보험금 지급을 회피해 왔으니 보험사들은 입이 있더라도 할 말이 없다.

이번 즉시연금 미지급금 사건은 사업비 공제 내용을 소비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높은 공시이율만 강조하며 서둘러 가입시켰을 뿐, 보험료에서 사업비 얼마가 빠지고 빠진 금액에서 연금이 어떻게 산출, 지급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입자들은 보험료 전액이 연금 재원이 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되었다.

보험은 은행 예적금과 달리 낸 보험료가 원금이 아니다. 즉, 위험보험료와 사업비를 차감한 저축보험료가 원금이고, 여기에 공시이율이 적용되어 적립금으로 쌓여간다. 그런데 생보사들은 “공시이율이 은행보다 크게 높다”고 광고할 뿐, 저축보험료만 적용된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이런 과장 광고를 믿고 가입해서 낭패를 보고, 뒤늦게 속았다며 하소연하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사업비를 설명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 이익에 반한 것이고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사업비는 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가입자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하고, 보험료 전체가 아니라 저축보험료에 대해서만 공시이율을 적용해서 적립금으로 쌓고, 쌓인 적립금으로 연금, 해지환급금 등이 지급된다는 사실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금감원은 입으로만 ‘소비자 보호’를 외치지 말고 소비자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고쳐야 한다. 보험사들에게 사업비 내용을 약관에 알기 쉽게 명시하고 해당 내용을 가입자에게 알기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명심하자. 보험료에 사업비가 포함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알았으니 앞으로 보험을 가입할 때는 사업비를 묻고 따져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현명한 소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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