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증선위 판단으로 엘리엇의 스케줄 빨라졌다
금융위, ISD는 지난 4월부터 예견…이번 판단과 무관
엘리엇, “한국정부의 부당개입으로 받은 손해배상하라”

증선위의 삼바 허위공시 판단 이후 엘리엇의 ISD소송이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편법 회계 문제가 이재용 승계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ISD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소장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희생시켜가며 삼성 총수 일가를 부당하게 지원했고 그로 인해 삼성과 이재용으로부터 상당한 금전적 이익을 취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자신의 투자 협정 상 의무위반으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이번 ISD소송이 지난 12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고의적 공시누락 판단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엘리엇이 ISD 소송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는 증선위의 판단을 비롯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2003년 SK그룹에 대한 미국계 소버린, 2004년 삼성물산의 지분을 매입하며 M&A를 노렸던 영국계 헤르메스, 2005년 KT&G에 공세를 펼친 미국의 투자자 칼 아이칸 등 외국자본의 공격이 있었을 때마다 국내 여론은 항상 외국계 자본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가 어떻게 결정 나느냐에 따라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이 외국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그에 대한 여론과 당국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며, “이는 지난 SK그룹, KT&G 때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오늘 임시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명백한 회계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그 위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고의로 공시를 누락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부당하게 변경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했다.

금융권은 삼성바이오에피스 문제 마저도 분식회계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엘리엇의 이번 ISD소송과 지난 12일 증선위의 결정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엇다.

금융위 관계자는 “엘리엇의 이번 소송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와 상관없이 진행된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 4월 13일 ISD에 제출한 중재 의향서를 접수하면서 소송 스케줄에 돌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의향서를 먼저 제출해야 한다.

ICSID는 중재 의향서를 접수받은 후부터 90일 동안 투자자와 피소된 국가 간 중재에 들어간다. 90일 동안의 중재가 실패하면 투자자는 곧바로 ISD 소송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금융권과 금융투자자들은 지난 12일 증선위 결정과 이번 엘리엇의 ISD 소송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증선위 판단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간 합병의 부당성이 증명된 이상 엘리엇과 같은 항의와 소송은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애국심과 국부유출 우려로 인해 삼성 봐주기 여론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넘어갈 경우 재벌의 불법 부당한 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며, “이 참에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박현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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