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설립에 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 출연
오너 3세 경영 승계 및 사익편취 악용 가능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회공헌 목적으로 설립된 주요 대기업의 공익재단이 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을 활용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차미소금융재단, 영훈의료재단,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물류산업진흥재단 등 5개 공익재단을 설립·운영하고 있다.

이 중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설립한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설립 당시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과 이노션의 지분을 일부 확보했다. 2007년 설립된 이 재단은 미래인재 양성, 소외계층 지원, 문화예술 진흥 등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몽구재단은 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을 각각 4.46%(167만1018주), 9%(18만주) 보유 중이다.

재단은 해당 주식을 통해 각 계열사의 핵심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재단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4.46%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정의선 부회장(23.29%), 정몽구 회장(6.71%), 현대차그룹(4.88%) 뒤를 이어 네 번째 주주다. 또 이노션의 보유지분은 9%로 정성이 고문(27.99%), NHPEA IV Highlight Holdings AB(18%)의 뒤를 이어 3대주주다.

공정위는 현대차그룹이 2014년 2월 시행된 사익편취규제를 벗어나기 위해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 일부를 재단에 출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이노션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80%에 이른다. 정 고문과 정 부회장이 각각 40%씩 보유하고 있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이 11.51%, 정 부회장이 31.88%를 보유하면서 총 43.39%의 지분을 가졌다.

내부거래 비중 역시 높았다. 2014년 기준 이노션의 내부거래 비중은 45.7%, 글로비스는 24.7% 수준이다.

현재 그룹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를 넘으면 사익편취규제를 적용받는다. 연간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거래 관계에서 3년간 평균매출액이 12%를 넘어도 제재를 받는다.

기존 지분율 및 내부거래 비중을 현행에 적용하면 이노션과 글로비스는 사익편취규제 대상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사유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총 8500억원 상당의 이노션·글로비스 주식 일부를 재단에 기부했다.

정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분이 정몽구재단을 통해 분산되면서 현재 두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29.9%까지 떨어졌다. 규제 대상에서도 벗어났다.

공정위는 현대차그룹이 공익재단을 내세워 그룹 내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교묘하게 규제를 회피했다고 판단했다. 일부 대기업이 사회공헌 및 자선사업 등을 명목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을 마중물 삼아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 및 사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한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정몽구재단 관계자는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실제 목적사업을 운영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부로 와닿는 문제점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정위가 공익법인에 대해 칼날을 들이데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은 있다. 논란이 되는 만큼 신경이 쓰이고는 있지만 목적사업을 하는데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달 기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32개사 중 20개 그룹이 총 42개의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들 재단이 총 84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규제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특별위원회 산하 기업집단법제 분과위는 토론회를 통해 상장사 규제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상장사와 마찬가지로 20%를 적용하자는 게 골자다.

공익재단을 활용해 교묘하게 규제 대상을 피하는 대기업의 꼼수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이달 중 개편안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정기국회에 정부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투데이 박현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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