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재계가 역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동시다발적 ‘연쇄 악재’를 맞은 형국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통상전쟁’의 유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설상가상으로 국제유가와 환율도 변동성이 심화하면서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건 당국의 압박이 ‘상수’가 된 가운데 과거 정경유착 의혹 등에 대한 수사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그룹 총수 일가를 둘러싼 각종 구설수와 폭로, 재계 단체의 내분 등으로 그야말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올해는 ‘총수 수난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30대 그룹 오너들이 줄줄이 각종 사건·사고의 장본인으로 등장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올 초 항소심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고, 신동빈 롯데 회장도 올 2월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돼 여전히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은 불법 정치자금 기부 혐의로 한때 구속 위기에 몰렸으며, 이중근 부영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발단이 돼 사실상 가족 전체가 수사 대상에 오른 조양호 한진 회장 일가, 때아닌 ‘기내식 파문’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도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부인 노소영 씨와의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DB그룹은 총수의 성추행 의혹으로 회장이 바뀌는 사태를 맞았다.

이들과 경우는 다르지만 고(故)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4세대인 구광모 회장이 총수에 오른 LG그룹과 우여곡절 끝에 최정우 회장을 내정한 포스코 등은 경영 승계 과정의 ‘불확실성’이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검찰의 주요 수사 대상에 올랐던 삼성은 올들어서도 ‘압수수색 단골’이 됐다. 노조 와해 의혹, 다스의 미국 소송 대납 의혹 등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등이 압수수색을 받은 횟수는 올 들어서만 20차례에 육박한다.

이에 더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삼성생명 등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정리를 요구하는 금융위원회의 압박, 에버랜드 공시지가 급등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도 잇따랐다.

LG그룹도 앞서 5월 초 사주 일가의 탈세 혐의와 관련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고,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등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수주전과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한진그룹은 최근 약 3개월간 검찰, 경찰, 관세청, 공정위, 국토부 등으로부터 동시에 조사를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공정위 간부들의 기업 불법 취업과 관련해 지난달 신세계페이먼츠, 대림산업 등이 압수수색을 받은 데 이어 앞서 5일에는 현대차 본사에도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6일 재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서는 기업을 상대로 한 검찰 압수수색 뉴스가 거의 매일 나오는 느낌”이라면서 “대부분은 주요 대기업들이 스스로 자초한 사태이지만 ‘대기업 길들이기’라는 불만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내외적인 경영 악재도 끊이지 않으면서 재계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양상이다.

우리 경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는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압박으로 ‘불안한 호황’을 이어가고 있고, 자동차 역시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에 이어 올해는 미국의 ‘관세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한반도 평화 무드에 따른 남북경협 기대감이 커졌지만, 최저임금 인상, 저성장 기조 고착화 우려, 투자심리 냉각, 근로시간 단축 등이 기업들로서는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요구하는 현실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말 여당 원내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향추세에 있다는 게 분명한 현실”이라면서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재계를 대변하고, 정부에 기업 건의사항을 전달해야 할 경제단체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재계 대표단체로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정농단 게이트’ 이후 사실상 해체 수순의 위기를 맞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홍’에 휩싸이며 허우적거리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남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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