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암보험의 약관 조항(암의 직접적인 치료 목적)을 두고 암보험 가입자와 보험사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관 조항에 대하여 당사자가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직접 치료가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특히 요양병원의 암 입원비는 대부분 거절한다. 반면 암환자들은 요양병원 입원도 암 치료를 위한 것이라며 보험사 주장을 반박한다. 민원, 분쟁조정, 소송 등에서도 명확히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설득력 있는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험사에서 오랫동안 약관 작성, 위험율 산출 및 상품개발에 종사한 경험이 있고, 현재 금융소비자원에서 소비자 보호 일을 하고 있는데, 암보험 약관 분쟁을 명확히 해결하는 방법은 약관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암 입원율을 사실대로 따지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선, 분쟁의 화근이 된 약관 조항은 암 치료를 뜻하는 것으로, 암 환자가 교통사고나 다른 질병 등으로 입원한 경우 암 입원비의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암의 직접적인 치료가 아닌 간접적인 치료(=간접 치료자)나 요양병원 환자를 제외한다는 것이 아니다. 약관에 ‘간접적’, ‘요양병원 제외’라는 문구가 없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생명보험 표준약관에 “보험회사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보험사들이 약관을 계약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보험사가 만든 약관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고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보험사들은 보험금 거절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보험사에 유리한 대법원 판결 (2008년, 2013년)을 받아 내 이를 근거라며 보험금을 거절해 왔고, 2014년 4월에는 금감원 지시로 약관조항을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에서 ‘암의 직접적인 치료 목적’으로 변경했다.

여전히 민원이 속출해 2015년 한국소비자원은 “암보험 약관이 더 명확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금융위와 금감원에 권고했다. 그러나 아무도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외면하고 방치한 것이다.

그 후, 요양병원 치료자에게 암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례(2016년 9월)가 나왔다. 법원은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치료는 암을 제거하거나 암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한 치료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암 자체 또는 암의 성장으로 인하여 직접 발현되는 중대한 병적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한 치료를 포함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금감원도 이를 배제한 채 2017년 11월 ‘금융꿀팁(암보험 가입자 필수정보)’에서 보험사 주장의 법원 판례와 금감원 선례만 알렸다. 금감원이 ‘보험사와 한통속’이고, 소비자를 보호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되는 것이다. 급기야 보험금을 받지 못해 분노한 암환자들이 지난 2월부터 금감원 앞에서 단체로 시위한 것이 크게 보도되면서, 금감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이제야 약관을 개정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번엔 암 입원율이다. 보험사가 암보험 개발 시 사망률, 발생율, 입원율, 수술율 등을 적용해서 보험료를 산출한다. ‘암입원율’은 암보험 가입자 중에서 매년 경과할 때마다 몇 명의 암 입원자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연령이 될수록 높아진다. 그러므로 암 입원율 산출대상에서 암의 간접치료자와 요양병원 입원자가 제외되었는지 확인하면 분쟁은 명확히 해결된다. 즉, 암입원율 산출대상에서 이들이 제외되었다면 보험사 주장이 맞고, 포함됐다면 보험사 주장이 틀린 것이다. 따라서 암 입원율 확인은 암보험 약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본질(핵심)이고 당사자 모두 거부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자료다.

금융소비자원은 금감원과 보험요율 산출기관인 보험개발원에 서면으로 “암보험요율 산출대상에서 암의 직접적인 치료목적이 아닌 자와 요양병원 입원자를 제외했는지를 질의했고, “만약 제외 했다면 그 증거를 첨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금감원은 ‘보험개발원의 소관사항’이라며 에둘러 책임을 회피했고, 보험개발원은 뒤늦게 질의에 대한 답변을 동문서답했다. 즉 “보험회사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험요율을 산출하거나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참조순보험요율을 산출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에 보험개발원에 다시 질의서를 보냈는데, 회신내용은 전과 동일하다. 아마도 암 입원율이 사실대로 알려지면 그 동안 과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 은폐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보험사들이 암 입원률 산출 시 간접치료자와 요양병원 환자를 제외했다면 증거를 제시해서 당당하게 가입자를 이해시키면 된다. 반대로 포함했다면 간접치료자, 요양병원 환자로부터 보험료를 더 받고 보험금을 거절한 것이고, 보험요율 산출의 원칙(보험업법 제129조)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본질(암 입원율 산출)을 감추고 곁가지(약관 조항)만으로 가입자를 기만한 것이고, 보험사 주장의 대법원 판례도 본질을 누락한 것이므로 보험금 거절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판매 당시 요양병원이 없었다는 것은 면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런 것을 감안해서 입원율 적용 시 이미 안전할증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암보험 약관 분쟁은 소비자 권익과 직결된 중대한 일이므로 시비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금감원은 약관 일부 변경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판명되는 결과에 따라 더 받은 보험료를 환급하거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보험개발원이 보험요율 산출기관으로서 정직 하고 공정한 기관이라면 암 입원율 산출대상에 간접치료자와 요양병원 환자를 포함 또는 제외 했는지를 당장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행여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답변을 회피한다면 소비자 (국민)를 농락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소비자들은 보험개발원의 해명을 눈을 크게 뜨고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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