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정치인’, 김영삼·김대중 등과 한국 근대 정치사 이끌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3金 시대’가 완전히 종결됐다. 각종 포털에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인은 1926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다. 1947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부를 2년 수료한 후 이듬해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했다.

1958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을 지냈으며, 1961년 중령으로 5·16군사정변의 주역으로 참여해 1963년까지 초대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그 해 준장으로 예편한 후 공화당 창당위원장을 맡았다.

6대 국회의원과 공화당의장직을 지냈으며, 1967년에는 7대 의원에 당선됐으나 1968년 반대세력에 밀려 국회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해외로 나갔다.

1970년 공화당 총재 수석상임고문, 1971~73년 공화당 부총재, 1971년 8대 국회의원, 1971년 6월~1975년 12월 국무총리를 지냈다.

또 1973년 9대 국회의원을 겸하고 1976년 한일(韓日)의원연맹회장,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62년 11월 12일 중앙정보부장으로서 일본의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와 회담, 대일 청구권 문제와 평화선, 법적 지위 문제 등에 대해 타협점을 찾고 메모를 교환함으로써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초석을 마련했다.

10·26사건 후 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환수의 수난을 겪었다.

1987년 공화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1990년 노태우·김영삼 등과 민자당을 창당해 최고위원이 됐다.

또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그해 8월 민자당 대표위원이 됐다.

1995년 2월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후 총재가 됐다.

고인은 박정희·김대중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金 시대’라 불리며 한국 근대 정치사를 이끌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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