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정치(政治). 바룰정에 다스릴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스린다는 큰 뜻을 의미하지만, 현 시대 정치는 정당정치로 변형된지 오래다. 이제는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포, 관우, 조운처럼 무공이 뛰어난 장수도 있고, 공명과 방통처럼 머리가 좋은 책사들이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 유비, 손권 등 세 영웅 가운데 유난히 조조 주위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았다.

그 가운데 곽가와 장간 두 사람은 후대에 여러 부분에서 비교가 된다. 두 사람 모두 조조의 문사(文士)다.

곽가의 자는 봉효(奉孝)로 어려서부터 앞을 내다보는 지식이 있었다. 봉효는 순욱의 추천으로 조조의 참모가 됐다. 조조는 봉효를 매우 아꼈고 봉효는 조조를 잘 섬겼다고 한다.

그는 조조가 여포를 사로잡을 때도 중요한 임무를 했고, 손책의 죽음을 예견했으며 모든 부분에서 조조보다 우위에 있던 원소를 물리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봉효는 원소를 토벌하는 도중 병을 얻어 37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조조는 그의 죽음을 가슴 아파했다.

특흐 조조는 적벽 대전에서 유비-손권 연합군에 대패한 후 허창으로 돌아가면서 “봉효만 살아 있었더라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라며 긴 탄식을 했다.

만일 조조의 말처럼 봉효가 살아 있었다면 적벽대전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철쇄연환계라는 계책을 펼치기 위해 찾아온 방통(자·봉추鳳雛)의 속내를 알아채고 참수 했을 것이다.

조조는 연환계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수군을 강화 시켜 적벽대전에서 보다 쉽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황개와 주유의 고육지책 작전도 간파해 반격을 했을 것이며, 자신의 진영쪽으로 바람이 불 때 먼저 후퇴해서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봉효가 살아있었다면 조조는 적벽 대전에서 큰 패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인물인 장간의 자(字)는 자익(子翼)이며 어려서 주유(자·공근公瑾)와 동문수학했다. 조조가 적벽에서 오군과 대치하고 있을 당시, 옛 친구인 자익은 강동으로 건너가서 공근을 조조에게 투항시키려 했다.

그러나 공근은 이를 역이용해 반간계를 펼친다. 크게 취한 척 함께 잠을 자며 위조된 조조의 수군도독(水軍都督)인 채모·장윤의 밀서를 훔쳐가도록 유인한 것이다. 이에 속은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죽이고 수군도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익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그는 방통을 조조의 군영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방통이 조조에게 연환계(連環計)를 바치고, 조조군은 화공을 당해 참담하게 패한다. 이렇게 장간은 두 차례나 속임수에 걸려들고도 스스로 계책을 얻었다고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어리석으면서도 영리한 척하는 인물의 전형이 되었다.

현시대에서 곽가는 최고의 참모 혹은 책사로 평가되지만, 장간은 모사꾼 혹은 협잡꾼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자 한다. “국민들에게 책사로 남을지, 모사꾼으로 남을지 선택은 본인이 할 수 있으나,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길 바란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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