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해 기자의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09. 김의철과 뉴코아그룹
한종해 기자의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09. 김의철과 뉴코아그룹
  • 한종해 기자
  • 승인 2018.06.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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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너진 ‘유통공룡’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이 2000년 8월 21일 사기, 횡령 혐의로 서울지검에서 구속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이 2000년 8월 21일 사기, 횡령 혐의로 서울지검에서 구속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2학번 동기들이 대기업 회장에게 휴가를 제안했다. 그간 사업 등을 핑계로 수차례 거절을 한 터라 이번에는 아예 여비를 염출하고 왕복 항공권까지 구입해 전달했다. 어쩔 수 없이 부부 동반 휴가를 떠나게 된 회장. 동기생들은 회장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도 일거리를 찾을 것을 우려해 전화도 없는 오지로 휴가지를 정했다.”

1996년 8월 19일 자 《매일경제》에 실린 ‘뉴코아 김의철 회장 17년 만에 화려한 휴가’라는 기사의 일부다.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은 일벌레였다. ‘미스터 불도저’라는 별명도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러한 김 전 회장의 지나친 열정은 ‘유통 공룡’의 무너짐을 재촉했다.

보다 싸게, 그리고 보다 많이

‘10원 전쟁.’ 국내 할인점 시장 3강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벌이고 있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2013년 여름 홈플러스가 일주일 동안 냉장 삼겹살을 100그램당 1550원으로 할인 판매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이마트는 정상가보다 20퍼센트 할인한 100그램당 1440원으로 할인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에 자극을 받은 롯데마트는 100그램당 143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홈플러스는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100그램당 1420원으로 냉장 삼겹살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히고 나섰다.

할인점들이 이런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박리다매’ 원칙 때문이다. 정상가로 판매해 이문을 올리기보다는 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해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면서 조금씩, 하지만 더 많이 팔겠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에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운 할인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다. 1993년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들었고, 2년 뒤 롯데그룹이 롯데마트로 동참했다. 1997년에는 삼성물산과 영국 유통 기업 테스코가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쟁이 심화되자 상품을 묶어 대량으로 팔고 실내 인테리어 비용을 절약해 원가를 최대한 줄여 상품 값을 낮춘 창고형 할인 매장도 등장했다.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는 1998년 코스트코 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고, 롯데마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빅마켓을 열었다. 이마트도 이마트 트레이더스라는 창고형 할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킴스클럽’이라는 브랜드로 박리다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뉴코아그룹이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중도 시장을 겨냥해 유통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뉴코아그룹의 중심에는 김의철 전 회장이 있었다.

한신공영에서 뉴코아로

1942년생인 김 전 회장은 고려대 역도부 출신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보일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의 눈에 띄어 1969년 한신공영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그의 인생은 첫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다. 한신공영은 김 창업주가 1950년 설립한 건설업체로, 1970년대 중반 대규모 아파트 분양과 중동 건설 붐으로 크게 성장했던 기업이다. 건설부가 발표하는 도급 한도액 순위에서 한신공영은 1972년 44위에서 1973년 19위, 1974년 10위까지 성장했다.

김 전 회장은 입사 2년 만인 1971년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맏사위 자리에 앉게 됐다. 2년 만에 과장 직함을 단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큰딸을 내어줄 정도라면 김 창업주가 얼마나 김 전 회장을 신임했는지 상상이 된다.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초반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 강남 반포 일대의 땅을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거 사들였다. 1970년대 초반은 강남 개발 붐이 불기 이전이기 때문에 반대가 당연했다. 하지만 1976년부터 김 전 회장이 매입한 토지에 1~11차로 이어지는 한신공영 신반포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김 전 회장의 통찰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한신공영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아파트 내 상가 분양 이외에도 직접적인 유통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신공영은 같은 해 ㈜뉴코아유통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반포에서 30평짜리 뉴코아슈퍼마켓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 한신공영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연건평 9000평 규모의 뉴코아쇼핑센터를 개점하고 1층 슈퍼마켓을 김 전 회장이 직접 운영했다. 영업 개시 후 5개월이 지나면서 하루 매출이 1000만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88년 9월 뉴코아백화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8년 9월 뉴코아백화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1년 한신공영 내 상가사업부가 인력 보강과 동시에 별도의 법인인 ㈜뉴코아로 분리되면서 김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게 김 전 회장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김 창업주의 장남 태영 씨가 한신공영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한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었기에 사위인 김 전 회장의 분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장직에 오른 태영 씨는 뉴코아가 분가된 후 한신공영 내 유통사업부를 두고 1983년부터 한신코아백화점 전주점을 기작으로 노원점, 광명점, 성남점, 대전점 등 5개의 백화점을 별도로 경영했다.한신코아백화점은 추후 한신공영의 해체로 타 유통업체에 인수되어 현재는 ‘세이브존’이라는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

한신공영과 뉴코아의 분리가 마무리된 시점은 1993년. 이후 김 전 회장은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인첨과 평촌에 백화점을 열었고, 1995년 킴스클럽을 설립하면서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진출했다. 1994년부터 1996까지 3년간 신규 개설한 백화점과 할인점만 17개에 이른다. 김 전 회장에게는 ‘일벌레’ ‘미스터 불도저’ 등과 같은 별칭이 따라붙었다.

김 전 회장은 기존 유통업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는 뉴코아의 사훈처럼 철저한 박리다매 방식을 고수했다. 킴스클럽은 국내 최초로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도입했고, 뉴코아에서는 고졸 출신도 능력만 있으면 점포장에 오를 수 있었다. 매년 설에는 김 전 회장이 전국 사업장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계장급 이상 직원에게 ‘떡값’을 직접 나눠주었으며 월급을 현금으로 줘 월급날에는 총무부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조직문화는 직원들에게 단합과 애사심을 가져왔지만 분명 조직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월급을 현금으로 줬다는 것은 유통업체에는 필수적인 전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며, 회장이 직접 사업장을 일일이 돌며 직원들을 챙겼다는 것은 오너가 아니면 직원들은 뭐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재계 27위이자 계열사만 18개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회장 한 명의 ‘원맨쇼’로 운영됐다는 얘기다.

무리한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어줄 직원이 없었으니 점포망 확장에 따른 차입금은 무섭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입지가 중요한 유통업의 특성상 당시 기준으로 한 개 점포를 확장하는데 최소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1996년까지 확장한 17개 점포만 따져도 최소 1조7000억원 이상이 차입금으로 묶여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1996년 말 기준 뉴코아그룹의 재무상황을 보면 자본금 2117억원, 매출액 2조2788억원, 부채총계 2조5912억원, 자기자본비율 8%, 부채비율 1223%를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미금백화점, 미금킴스클럽, 화정백화점, 창원백화점, 창원킴스클럽, 일산백화점, 의정부백화점 등이 1997년 말 개장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이 역시 막대한 차입금에 의존한 공사였다.

결국 뉴코아그룹은 1997년 11월 ㈜뉴코아, 뉴코아종합기획, 뉴타운건설, 뉴타운기획, 시대종합건설, 시대물산, 시대유통, 시대축산 등에 대한 화의 신청에 들어가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주력 기업인 뉴코아는 1999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이랜드가 인수하여 2004년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정상 운영되고 있다.

1998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뉴코아 계열사 가운데 살아남은 뉴타운산업(씨마유통)과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비투올네트를 발판으로 재기를 시도했다. 씨마유통을 통해 1998년 부천에 패션쇼핑몰 ‘씨마1020’을 열었으며 비투올네트를 통해 국내 최초 인터넷 할인쇼핑몰 문을 여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씨마1020은 당시 부천 상동 상권을 주목받게 했으나 점차 하락세를 탔고, 정보 업체 텐커뮤니티에서 2002년 씨마1020을 인수해 ‘투나’로 이름을 변경하고 운영 중이다.

김 전 회장은 1994년 8월부터 1995년까지 허위 리스계약서를 작성, 10개 리스사로부터 24차례에 걸쳐 357억여원을 대출받아 빼돌리고 1억5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2002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2003년 말에는 계열사였던 하이웨이유통과 시대종합건설을 통해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하여 1994년 7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금융회사로부터 1490억원을 대출받았고 1374억원 상당의 공모 보증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무리한 점포확장과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등 독선적으로 기업을 경영한 김 전 회장에게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아버지처럼 유통으로 먹고사는 오너 일가

이후 김 전 회장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전직 임원들이나 측근들도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들리는 소식을 종합하면 자택에서 경제·경영관련 서적을 읽거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역 시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골프도 가끔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당뇨와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던 씨마유통은 외국계 투자회사로 이미 넘어간 상태이며 비투올네트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2007년 해산간주, 2010년 12월 청산종결됐다. 해산 전까지 김 전 회장의 사위인 박종채 씨가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딸 재연 씨가 이사를, 외동아들인 태훤 씨가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 전 회장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저 사위 박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유식·베이비푸드 유통업체인 커머스파크는 일본 이유식 1위 업체인 와코도의 독점 수입·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커머스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11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으며 신세계몰, 롯데마트, GS슈퍼마켓, 이마트, 코오롱 W스토어, 홈플러스, CJ올리브영, 농협중앙회 등 국내 대부분의 유통업체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박 씨의 부인이자 김 전 회장의 딸인 재연 씨는 이 회사의 감사 자리에 올라있다.

재연 씨는 얼마 전까지 인터넷 육아·완구용춤 쇼핑몰인 마이토이월드 사장자리에 올라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본사가 있는 마이토이월드는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2002년 모 신문사로부터 업계 최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들 태훤 씨는 이사를 맡고 있었다. 태휜 씨는 200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토이월드는 김 전 회장이 가끔 경영자문을 해주시지만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회사이며 아직은 작은 업체들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6년 12월 5일 해산됐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뉴코아그룹은?>

▲1950년 한신공영 설립
▲1978년 ㈜뉴코아유통(별도 법인) 설립
▲1980년 뉴코아쇼핑센터 개점, 뉴코아슈퍼마켓 영업 개시
▲1981년 ㈜뉴코아, 한신공영에서 불리, 김의철 전 회장 대표이사 취임
▲1995년 킴스클럽 설립, 백화점·할인점 등 본격 확장
▲1997년 화의신청 및 그룹 해체
▲2003년 뉴코아, 이랜드에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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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6:29:46
이런게 기사지요 수고하셧습니다 좋은정보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