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연맹 6가야 중 하나로, 경남 함안에 자리 잡았던 아라가야(이하 안라국). 확인된 유적이나 유물들이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미뤄볼 때 안라국은 가야연맹 초기부터 변한 지역의 주요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전기 가야연맹은 금관가야(이하 가락국)을 중심으로 서기42년부터 400년까지 형성됐다. 가락국은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경자대원정’에 의해 수도인 김해까지 함락되며, 쇠퇴의 길을 걷다가 522년 멸망한다.이후 가야연맹은 대가야(이하 반파국)와 안라국을 중심으로 후기 가야연맹이 형성된다. 반파국이 신라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자
아라가야(阿羅伽倻) 즉 안라국(安羅國)은 경남 함안군 일원에 자리 잡았던 가야 소국 중 하나다. 안라국은 변한 시대부터 있던 나라로, 가야연맹 국가 중 그 위치가 논란 없는 주요국가 중 하나다. 가야연맹내에서도 안라국을 형님격으로 모시고 따랐을 만큼 금관가야와 대가야 외에 나름대로 족적을 남긴 나라다.에서는 변진안야국(弁辰安邪國)으로, 광개토왕릉비와 에서는 안라(安羅)와 아라라(阿羅羅)로 나타난다. 또 와 에서는 를 인용해 아시랑국(阿尸良國)으로 기록했다.안라국은 김수로왕과
경남 김해시 봉황동에 자리잡은 ‘봉황대(鳳凰臺)’. 김해시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 회현리 패총과 연결되어 있다. 가락국 최대 생활 유적인 봉황대는 예로부터 가라대(伽羅臺), 망해대(望海臺), 여의현(如意峴), 독현(獨峴), 회현(會峴) 등으로 불려져 왔다.봉황대가 있는 독립구릉과 주변 지역 일대의 유적은 1907~1935년 일본인 이마니시, 우메하라, 하마다 등에 의해 수차례에 걸친 발굴이 이루어져 ‘김해 회현리 패총’으로 널리 알려졌다.1991년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사적지정구역을 제외한 봉황대 구릉 전체에 대한 시굴
‘회장님’이 단독 1억원을 못 구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쉬이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다. 2014년 9월 별세한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얘기다. 다행이 부인이 돈을 구해와 집이 넘어가는 것은 막았지만 그만큼 어렵게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가족은 소위 ‘있는 집’에서 잘살아가고 있다.식용유 하나만큼은 잘 만들었네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부친이자 동방유량 창업주인 고 신덕균 명예회장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1950년대 말 눌원문화재단을 설립하여
3세기 초반 경상도 남부 지방에 위치한 소국이 금관가야와 신라를 침공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포상8국의 난’이라고 부른다.포상8국(浦上八國)은 오늘날 경남 연안 지역에 있었던 8개의 소국을 가리키며, ‘8포상국’(浦上八國)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10대 왕인 내해왕(재위 196~230년)때 포상8국이 연합해 금관가야와 신라를 공격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내해이사금’ 조(條)에는 “내해왕 14년(209년) 가을에 포상8국이 공모해 가락을 침범하자 가라 왕자가 구원을 요청했다. 왕이 태자 우로
금관가야는 농업국이 아닌 국제 허브항을 보유한 해양왕국이었다. 가야의 철정(鐵鋌)은 고대의 ‘반도체’이며, 동아시아의 화폐로 통용됐다.금관가야는 철기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는 대성동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철기 부장품을 통해서 확인된다. 고대사회에서 철은 오늘날 석유 및 핵무기에 비유된다. 그 자체가 사회변동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강철을 가진 나라가 주변 일대를 지배했다.금관가야 이전부터 한반도는 철기가 사용됐다. 경남 창원시 ‘의창 다호리 유적’이 그 증거다. 의창 다호리 유적은 삼한시대 연구, 특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
무일푼으로 시작해 막노동, 엑스트라 등을 거쳐 중국집, 일식집, 극장 식당, 의류 도매 센터를 차리고 부동산 개발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궈낸 사나이가 있다. 자수성가형 기업가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이다. 그러나 안 전 회장은 속도를 줄이지 못해 자멸하고 말았다. 의류와 부동산 사업이 승승장구하자 모든 것을 유통에 쏟아부었다. 은행에서 끌어다 쓴 돈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집도 절도 모두 날렸다. 하지만 그의 근황 어디에서도 ‘망한 총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무일푼으로 대기업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가‘조이너스’라는 여성 의
1990년 6월은 한국 고대사에 큰 파장이 일어난 날이다. 이날 경남 김해에 소재한 가로 208m 세로 22의 구릉의 실체가 드러났다.그 구릉이 바로 대성리고분이다. 김해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구릉을 ‘애꼬지’ 즉 아이와 구지라는 뜻으로 불러왔다. 이 애꼬지의 실체가 드러난 날 국내 학계 뿐 만 아니라 해외 학계에서도 큰 이슈를 불러왔다. 대성리고분에서는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이후 범국가적인 관심을 받아 3차에 걸쳐 400일 동안 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를 통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야국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다.파형동기, 동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는 반도체 산업과 그 궤를 같이해왔다. IT 산업 발전으로 이어진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핵심 산업으로 그 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기틀은 삼성전자가 마련했다. 1992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킬로바이트 D램을 개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256메가바이트 D램, 1기가바이트 D램을 최초로 개발했다. 그 기세로 삼성은 세계적인 전자 제품 기업으로 떠올랐고 ‘반도체=삼성’이라는 신화를 달성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시대를 앞선 판단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그
금관가야는 서기 400년(경자년) 광개토 대왕의 5만 기병에게 실질적으로 패망한 후 집단 이동을 통해 일본에서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일본의 건국신화인 신무동정은 김수로왕의 탄생설화와 동일하다. 천손강림마츠리는 구지봉에서 아홉명의 추장들이 춤과 노래를 불러 하늘의 천신을 점지 받는다는 내용으로 완전 일치하고 있다.일본 역사가들은 응신 이전의 역사는 허구라고 입을 모은다. 응신이 일본 역사의 시조인 것이다.일본 역사의 시조인 응신은 금관가야의 수도인 김해가 함락됐을 당시 유민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민족 대이동을 한다.삼국지 왜인전에 의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2학번 동기들이 대기업 회장에게 휴가를 제안했다. 그간 사업 등을 핑계로 수차례 거절을 한 터라 이번에는 아예 여비를 염출하고 왕복 항공권까지 구입해 전달했다. 어쩔 수 없이 부부 동반 휴가를 떠나게 된 회장. 동기생들은 회장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도 일거리를 찾을 것을 우려해 전화도 없는 오지로 휴가지를 정했다.”1996년 8월 19일 자 《매일경제》에 실린 ‘뉴코아 김의철 회장 17년 만에 화려한 휴가’라는 기사의 일부다.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은 일벌레였다. ‘미스터 불도저’라는 별명도 따라다녔다. 하
해외 도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잡히지 않는다는 ‘깡’이 있어야 하고 그 ‘깡’을 보좌할 ‘현금’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중국 밀항도 배에 몰래 숨어들기 위해 ‘돈 다발’을 넘겨줘야 한다. 1000만원에서 1500만원선이란다. 재벌 총수들은 어떨까? 해외 도피를 위해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이 들고 튄 돈은 임직원 499명의 임금을 포함해 무려 700억원이다.‘상떼빌’ 성원건설의 몰락아파트 브랜드 ‘상떼빌’로 유명한 성원건설은 1977년 용산구 이태원에서 설립된 태우종합개발㈜로 출발했다. 설립 1년 뒤 사명을 현재의 명칭
고구려본기에는 소수림왕 즉위 2년 임신(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사신과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2년 후인 갑술년에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동진에서 왔다. 이듬해 2월 초문사를 지어 순도가,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화상을 머물게 했다. 이것이 고구려 불법의 시초이자,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한국불교의 시초이다.그러나 한국불교는 이보다 약 300년 앞선 한반도 남쪽지역에 이미 전해져 있었다. 한반도 남쪽에 있던 금관가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가야사가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현재에 엄연히 존재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대입 논술에 많이 등장하는 논제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희소병에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를 살리려면 당장 3000만원의 수술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는 돈이 없다. 그래서 다른 아이를 유괴해 돈을 마련하여 자기 아이를 살렸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목적’을 위해 유괴라는 ‘수단’을 쓴 것이다. 물론 정당한 수단은 아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기업가가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그의 한보그룹은 ‘로비’로 성장해 ‘로비’로 무너졌다.▲은마타운
가야국의 10대왕인 구형왕(仇衡王)은 서기 521년에 즉위했다. 이때는 신라의 강도들이 침범하여 해마다 편안한 날이 없었다. 구형왕이 말하기를 “나는 사람을 기르는 국토 때문에 국민 해치기를 원하지도 아니하고, 또 차마 종사(宗社)가 나에게서 상실되게 할 수도 없다”라며 왕제(王弟) 구해에게 양위(讓位)를 하고, 태자(太子)에게 비빈(妃嬪)을 거느리고 지품펀(현 산청군)의 태왕궁에 은둔했다. 옥전의 위에 인사(仁祀)를 창건하여 시조를 추원하며 제사롤 모시는 장소로 삼았다. 재위는 12년이고, 4년이 지난 병진(丙辰:서기 536)년에
인류 역사상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며 사막을 옥토로 바꾼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이끈 회장님. 하지만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리고 끊임없는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 등 ‘불량총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회장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고액의 세금은 체납하고 있으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골프장 회원권을 상속하고 공금을 빼돌리는 회장님. 회사는 공중분해됐지만 최 전 회장이 망한 총수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사막을 옥토로 바꾸다물보다 기름이 많은 나라, 전 국토의 90%가 사막 등 불모지인 나라, 일
A는 B와 같다. C는 C다. 그렇다면 AC는 BC와 같아야 한다. 예외는 있다. 진로와 참이슬이다. 진로는 ‘참 진’자에 ‘이슬 로’자를 쓴다. 고로 진로는 참이슬이다. 소주는 소주다. 그렇다면 진로소주는 참이슬소주여야 하지만 아니다. 오류 발생의 이유는 무너진 진로그룹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일궈 놓은 ‘두꺼비 신화’는 아들의 오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판의 주인공은 캄보디아인 ‘찬삼락’이다. 찬삼락의 또 다른 이름은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다.▲두꺼비가 울고 있다“빨간 거 주세요~.” 필자가 술자리에서 주문
사업다각화. 기업이 주 사업 이외의 다른 분야로 사업 범위를 확장시키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사업다각화는 통상 네 가지로 나뉜다. 예컨데 현대자동차가 부품 회사인 현대모비스를 만든 것은 ‘수직적 다각화’다. 만일 승용·승합만 취급하다가 레이싱용 차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면 이는 ‘수평적 다각화’로 볼 수 있다. 또한 버스 사업을 시작했다면 ‘관련성 다각화’로, 자동차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면 ‘비관련성 다각화’로 볼 수 있다.이중 성공만 한다면 가장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비관련성 다각화’다. 매출을 올릴 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이다. 나는 어릴 적 이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1989년 출간된 이 책은 아직까지도 젊은이들을 위한 지침서로 꼽힌다. 새로운 길을 향해 용기 있게 개척해 나갈 것을 권한 김 전 회장. 하지만 그의 삶은 기업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대우는 무너졌고 김 전 회장은 살아남았다. 그의 말처럼 세계는 넓었다. 돈 숨길 곳도 많았다.▲세간이 많으면 ‘큰 집(大宇)’도 무너진다1967년 3월 섬유수출업체인 한성실업 무역부장 시절, 31세의 청년 김우중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뱁새는 황새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 무모한 일을 도모하다 실패한 이에게 던지는 말이다. 여기 보험업을 주로 영위하다 무역업에 손을 대면서 그룹 전체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얘기다. 총자산 9조6745억원, 영업수익 6조2283억원, 종업원 7318명, 대한민국 랜드마크 63빌딩에 위치한 본사를 자랑하던 대한생명보험은 최 전 회장의 욕심 덕(?)에 지금은 한화그룹 소유가 됐다.▲요단강을 건너다신동아그룹의 모기업은 이북출신의 창업자 고 최성모가 1953년에 세운
보통 기업이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설 때, 법정관리기업이나 부실기업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기업규모를 확장한다. 하지만 1990년대 재계 신화로 유명한 거평그룹은 달랐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방법을 썼다. ‘총알’을 더 끌어 모아 우량기업을 인수하고, 그 우량기업의 총알로 또 다른 우량기업을 인수하는 확장전략을 썼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에게는 항상 ‘인수합병의 마술사’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 뿐이다. 새우 등 껍질은 IMF의 파고를 견디기에 너무 약